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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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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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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악령이 내려왔다. 악이 관영함으로써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현상(사람들은 오컬트적이라고 말했다)을 수습하기 위해 기독은 아주 빠르게,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움직였다. 노령의 베테랑 구마사제는 짧은 확인을 거친 후 젊은 보조사제와 함께 장엄구마 의식을 진행했다. 구마에 실패한 건지 성공한 건지 악령의 징후들은 사라졌지만, 문제는 구마를 맡았던 베테랑 사제가 죽었고, 그와 동시에 침상에 묶여있던 부마자도 어떤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구마의식이 있었던 날로부터 3일 후, 세상에 나타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보조사제를 바닥에 메다꽂고 사제복을 찢어벗기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아무도 모른다. 보조사제 XXX이 72 악령 하나를 구마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는 한 문장만이 남을 뿐이었다.

 

 

 

한상혁×정택운

Spin-Off

 

 

 

    이 기록은 지워진 역사의 이야기.

 

 

    신부 XXX.

    라온교회에서 활동 중인 가장 젊은 신부. 라온 지역 자체가 변두리에 있다 보니 있는 신부들이라곤 거의 장년층인 곳에서 유일한 젊은 피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나 신부의 길을 결심한 청년들이라면 대부분 신학교에서 서품을 받는 대로 큰 교회에서 사명을 다하는 것에 비해(아무래도 조직이 큰 쪽이라야 더욱 체계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촌이나 마찬가지인 낡은 동네의 낡은 교회에 돌아온 신부는 흔치 않은 케이스인 것은 확실했다. XXX 신부가 더 이상하다 할 것은 고향이랍시고 돌아온 곳이지만 정작 부모님은 타지로 가셨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고향의 의미도 없는 곳이 라온 지역이었다. 그러나 XXX 신부는 한결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특이하긴 했지만 XXX 신부는 귀신 나올 것 같던 라온교회에 생기를 가져온 것은 맞았다. 최고참 신부는 입이 닳도록 XXX 신부를 칭찬했다. XXX 신부가 라온교회에서 주로 맡았던 일은 ‘교회지키기’였다.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신부들은 제 몸 건사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하루종일 교회에 있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XXX 신부의 몫이 되었다. 교회 같지도 않은 교회였지만 그래도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는데, 사실 이 예배로 걷은 헌금을 지킬 사람이 생겼다는 점에서(심지어 물욕도 없어서) 신부들은 입만 열면 그를 칭송하기 바빴다. 젊은 사람들은 전부 도시로 나가버리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주일마다 큰 교회로 가버렸기 때문에 교회의 규모에 따라 급여가 나오는 체계 상 헌금은 그들의 주 수입 중 하나가 되었다. 상부에 보고는 하나, 눈길도 손길도 잘 닿지 않는 부분일수록 으레 그렇듯 금액을 바꾸어 상달해도 다들 라온교회라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나 하면 다행이었다. 중요한 것은 라온이라는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의 오래된 지역이 있고, 그곳의 다 죽어가는 교회를 살려낸 신부가 있다, 그것이었다.

 

    XXX 신부의 일과는 새벽 다섯 시, 교회의 커다란 녹슨 철문을 활짝 열고 퀴퀴한 냄새를 빼는 것부터 시작했다. 가장 늦게까지 건물을 지켰을 XXX 신부는 가장 먼저 교회에 발을 들였다. 사실 몸 뉘일 침대 하나 들어갈 공간만 있었다면 정신부는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할 요량이었으나 애석하지만 그 정도의 공간도 용납되지 않았다. 기도를 짧게 올린 뒤 밤 동안 교회 곳곳에 쌓인 먼지를 쓸고 닦고 하면 일곱 시.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하다 보면 신부님들이 하나둘씩 교회로 들어오면서 소음을 만들었다. 그러면 XXX 신부는 눈을 뜨고 신부님들을 맞았다. XXX 신부 오늘도 일찍 와 있었구만, 따위의 인사를 하고는 오자마자 담배를 피우러 사라지면 성경을 펴고 한 줄씩 읽어내려갔다. 성경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동화책이나 어린이용 교재를 챙기고 있으면 곧 아홉 시였다. 웬 동화책, 웬 교재냐 하면 부쩍 교회에 놀러 오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새 신부님이 왔다는 소식에 쫄래쫄래 손에 손잡고 교회로 우르르 몰려들었던 아이들은 (젊고 잘생긴) 신부님께 푹 빠졌는지 매일 같이 교회에 와서는 담임목사님보다 더 호랑이 같은 최정환 신부님의 ‘여기가 유치원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따위의 매번 똑같은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놀다 갔다. 여자아이들은 신부님 신부님 하며 XXX 신부의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으며 남자아이들은 그 여자아이들을 따라다니는데 꼭 암탉 쫓는 병아리들 같았다. 변변찮은 유치원이나 놀이터조차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XXX 신부는 아이들을 위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으로 모자라 도시로 나가 사 오기까지 했다. 도서관의 책들은 말이 ‘빌렸다’지, 사정을 대충 전해들은 사서는 때되면 알아서 가져오라는 언질만 남겼다. (아이들은 서점에서 사온 새 책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걸로 봐선 도서관의 책은 금방 돌려줄 듯 싶었다.) 책을 보고있으라며 아이들을 두고 뒤뜰로 나와 등에 채인 땀을 말리려 새카만 옷자락을 붙잡고 조금 펄럭일 때면 그새를 못 참고 따라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갔다.

 

    점심은 신부님들과 아이들이 다 함께 밥을 먹었다. XXX 신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볼 때마다 쓰이는 돈은 모두 라온교회의 돈이었는데, 아이들이 오기 시작한 후로 나가는 식비가 조금 늘어났다. 왜 아이들의 식비까지 교회에서 부담해야하는지, 직접 입 밖으로 내진 않아도 은근히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던 신부님들은 XXX 신부가 돌봐주는 아이들의 부모가 주일에라도 와서 감사하다며 헌금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뒤로 이제는 공부하랴 놀랴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껄껄 웃어주는 아량까지도 베풀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어가며 유치원 선생님 노릇을 해도 XXX은 결국 신부지 선생님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각자 돌아가고 나면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앉아 성경책을 펴 공부했다. 신학교를 나와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됐어도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날 읽었던 곳부터 읽고, 또 다음날이면 전날 읽었던 곳부터 이어서 또.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두꺼운 성경을 완독한 횟수만 벌써 열댓 번째였다. 그걸로 모자라 신학교에서 폈던 책들을 꺼내 공부를 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 신부님들의 대부분은 이미 돌아가고 없고, 보통 혼자 남아있던 XXX 신부는 혼자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하루는 다음날 먹을 반찬과 국을 만들고 하루는 이제 손이 잘 닿지 않는 것들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닦아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은, 주일마다 쓰는 예배에서 쓰이는 기물을 제외한 영대나 성수, 예식 도구들이 그 예였다. 그렇게만 하면 XXX 신부의 하루는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한밤중에 접어들기 마련이었다.

 

    밤 10시. XXX 신부가 아무도 없는 예배실에서 기도를 올리는 시간. 그는 감사하고 참회한다. 숨 쉬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환경과 그 모든 순간이 있게 만들어주신 창조주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참회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로서 감정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순간순간 수면 위로 드러나는 감정의 잔여물 같은 그 생각들을,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남은 나를, 매일. 그리고. 더러운 인간 하나를...

 

 

왜 신부가 됐는가?

 

    그것은 신학교에 들어온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어왔던 질문이었다. 긴 학사과정과 재수, 삼수...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안일한 마음으로는 언젠가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게 될 것이란 저주가 가득 퍼부어졌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책망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왜 하필, 신부니, 아들아. 부모님은 갑작스레 신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고싶은 일을 하라고 했지만 그게 신부, 성직자일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필요한 만큼의 응원도 지지도 받지 못했으니 XXX이라고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XXX은 신부가 되고자 했던 최초의 다짐이자 무거운 생각을 떠올렸다.

 

“왜 이곳에 왔어.”

 

    안규원 담임목사님의, 무게있는 질문이었다. 그것은 그저 담배를 피우러 나온 담임목사님의 뒤를 쫓아온 비흡연자 신부에게 던지는 흔한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XXX은 슬쩍 비껴가는 질문을 마주 봤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죠.”

 

    XXX이 내놓은 답은 일전에 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그는 한참 부족한 답변에 더 따져 묻지 않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러면, 왜 왔어.

 

“죄 있는 인간이니까요.”

 

    담임목사님은 알았을 것이다. XXX이 마냥 솔직하게만 대답하지는 않았음을. XXX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신부의 길을 걸어오는 내내 가슴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두었던 그 마음을 깔끔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XXX의 대답만큼 속 시원하지 못한 얼굴을 한 담임목사는 담배를 대충 비벼끄고 건물로 돌아갔다. XXX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른 상체를 감싼 검은 천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곧 주름이 졌다.

 

왜?

    그 물음에 대한 진짜 답은 XXX의 먼 과거에 있었다. 시간은 흘러 품을 받기 전, 신학교에서 시험을 치던 때, 조금 더 흘러서 신학교 입학... 달력을 열 몇 개 갈아치우면 도착할 수 있는 그 시간에서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의 XXX을 볼 수 있다. XXX은 볼 수 있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의 그 아이를. 강산도 변하는 시간 동안 XXX이 가진 기억에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유리 파편처럼 어딘가 조각나지도 않고, 먼지 한 톨 쌓이지도 않고, 누렇게 바래지도 않은 기억에서 XXX은 아주 선명한 그 날들을 어제처럼 떠올렸다. 어쩌면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열아홉까지의 순간들은 XXX에게 있어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도 않은 시절로,

 

“XXX 형~ 뭐하고 있었어요? 책 그만 보고 나랑 놀자.”

“왔어?”

 

    XXX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 아이의 이름은,

 

“---아.”

 

    YYY.

    한창 꽃피워야했을 청춘 XXX의 가슴을 아프게 물들였던, 그 이름.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무뎌질대로 무뎌진 덕분에 그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곱씹을 수도 있게 됐지만, XXX은 단 한번도 경솔히, 가볍게, 쉬이 그 짧은 석자를 입에 담아본적이 없었다. 지난 세월만큼 그 이름은 XXX에게 무거워져만 갔다. XXX은 YYY을 사랑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런 사랑 말고. 진심으로 YYY을 사랑했다. 어렸지만 그 마음까지 어리지는 않았다. 그 증거처럼 XXX은 YYY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빠르고 뜨겁게 뛰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아릿하게 저며왔다. 하지만 성에 있어 아주 보수적이던 시대, 동성애가 큰 죄로 간주하던 시절. 보상 받을 수 없는 마음은 걷잡을 수도 없이 커져만 갔다. 급기야는 제 감정을 두려워하게 된 계기는 아주 거창하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깨끗한 종이에 한자씩 힘주어 그 아이의 이름을 적어보았던 그 날부터, 온몸을 타고 오르는 죄악이 XXX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차마 불태울 수 없었던 종이에 두꺼운 펜으로 몇 번이고 이름을 덮고 또 덮었다. 헐릴 대로 헌 종이는 결국 구멍이 났고, XXX은 새카맣게 닳은 그것이 꼭 제 마음 같다고 느꼈다. 같이 놀자며 다가온 YYY이 웃으면서 내민 손을 잡으려고, 뻗던 손이 저도 모르게 멈추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냈다. 영문을 모르는 YYY은 괜찮냐고 등을 두드려줬지만 XXX은 아침을 잘못 먹은 것 같다는 변명밖에 할 수 없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러니까 XXX은, 두려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감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감정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책임지지 못하게 됐을 때 서로가 받을 상처가 두려웠다. 너는 밝고 햇살 같은 아이니까 내가 함부로 좋아할 수 없어, 그런 낭만적이고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란 소리였다. XXX은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돌연 모든 연락을 끊고 신학교로 도망쳤다. 왜 굳이 많은 곳 중에서 신학교였느냐고 하면. 저를 지배하고 또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를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XXX에겐 아주 오만방자한 생각이지만, 오만방자하고 절박했던 과거의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으로 차츰 지워나갔다.

 

    신학교에서의 시간은 XXX에게 있어 많은 것을 지워나가는 시간이었다. 흔적을 지우고, 감정을 지우고, 생각을 지우고, 떠오르는 얼굴을 지우고... 처음엔 부모님께서도 YYY이 만나고싶어한다는 얘기를 전해주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YYY이 포기한 것인지, 부모님께서 오작교 역할을 관두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믿음대로 된다고 하였으니 XXX은 전자일 거라 믿었다. 정말 그 말대로 되었는지는 몰라도 약 7년 뒤, 다시 라온으로 돌아왔을 때 XXX을 반기는 사람들 중에 YYY은 없었다. XXX은 안도와 동시에 아쉬워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까.... 굳이 라온교회로 온 이유 역시도 YYY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들었던 이유들은 전부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고, XXX은 YYY의 머리털 한 가닥이라도 보기 위해서 굳이 다 스러져가는 낡은 교회에 왔다. 하지만 마을의 모두가 XXX을 기다렸어도 그 아이만큼은 XXX을 기다려주지도, 맞이해주지도 않았다. 모두가 있었지만, 그 아이만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었고, XXX은 이보다 더한 상황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하며 자신을 단련해왔다. 상상 속의 YYY은 아주 냉소적인 얼굴로 XXX에게서 등을 돌렸다. 수천, 수만번을 그렇게. 그러니까 이 정도 현실은 슬프지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먼저 잠적을 한 쪽은 본인이었으니까, 인제사 앞에 나타나 보려 기웃대는 것도 참 낯짝 두꺼운 짓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일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르면 혹시라도 이름이 닳을까 부르지 못한 만큼 그의 얼굴을 그리고 지우기를 수백 수천번을 반복했을 때 XXX은 잘못된 신앙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지우지 못할 존재를 가슴에 이미 품어둔 채로 신을 섬긴다. 한 분만을 섬기기로 맹세한 신부로서 가질 자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그렇기에 XXX은 참회한다. 죗덩어리 인간 하나를. 신부 속에 사는 더럽고 추악한 인간 XXX을. 그걸 매일의 위안으로 삼았다. 제가 죄인인 줄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것보단 낫다고, 죄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크게 다를 거라고. 하루하루가 죄와 참회의 연속.

 

 

그리고 스물아홉의 XXX은 보게 되었다.

YYY,

부마자가 된 YYY을...

 

 

    그것은 지독한 악취를 참지 못한 주민의 신고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도를 넘어선 악취, 냄새의 근원이라고 할만한 것은 집 하나. 팔뚝에 오른 흑갈색 반점은 부마자의 또 다른 상징. 주교님의 결정에 따라 구마사제를 보조할 보조사제로 XXX이 지목되었다. 첫 번째, 부마자가 발생한 지역인 라온 내에서 가장 젊은 신부였던 XXX은 또 하필 라온을 비롯한 인접 지역을 통틀어 엑소시즘, 곧 구마와 관련된 과목을 가장 최근에 들었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였다. 구마의식을 도맡아할 김신부는 아주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구마를 해오신 분이라 XXX이 보조사제로 정해지기도 전에 부마자와 먼저 접촉해 증상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구마 일정을 잡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XXX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YYY을 보고 나면 준비를 제대로 마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교에서 받은 서품이나 종, 보조사제 노트, 이것들 외에도 장엄구마의식에 필요한 것들은 많았지만, 그간 하루가 멀다하고 교회와 기물들을 쓸고 닦았던 덕분에 XXX은 필요한 물품들을 빨리 챙기고 보조사제의 역할을 숙지하는데 남은 시간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교회에 찾아온 아이들을 직접 맞이하지 못할 정도로 책에만 파묻혀 지냈지만, 사흘이란 짧은 시간에 비해 그동안 축적되어 온 구마에 대한 지식은 수백 년의 것이라, 결국 XXX은 베테랑 구마사제 하나만을 믿고 뛰어드는 불나방의 꼴에 지나지 않았다. 결전의 날은 삽시간에 코앞까지 다가와, XXX은 곧 책더미에서 벗어나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가방보다 더 묵직한 걸음을 이끌었다. 다시 라온으로 돌아왔을 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집에, 십년 전과 비교해봐도 정말 그대로였던, 악령이 들어 부마자의 숨에서 나오는 특유의 썩은 내를 풀풀 풍기고, 괴상한 비명과 저주를 쏟아붓고 있을 YYY이 있을 그 집에.

 

    김신부의 말로는 구마 일을 시작한 뒤로, 이 냄새를 맡고 토하지 않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면 대단한 악취였을 것이다. 역시 XXX도 짧지만은 않을 인생을 살면서 그런 악취를 맡아본 적이 없지만, 놀랍게도 구토감은 들지 않았다. 묵묵히 구마의식을 준비하는 모습에 김신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무래도 침대에 누워 쌕쌕 숨을 내쉬는 YYY 때문임을 XXX은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XXX은 조금 많이 슬펐다. 잔인하게도 인간은 아주 인간에 불과해서, 자신을 죽일 때마다 새로이 나는 그 마음은 늘 YYY과 다시 만나기만을 원해왔다. 원해왔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한쪽은 정상이지도 않은 채로의(사실은 양쪽 다 그럴 수도 있고) 재회는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내리누름과 동시에 모든 준비를 마친 XXX이 침대에서 몇 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눈짓으로 신호를 준 김신부가 성경책을 꺼내 들었고 XXX은 앞에 놓여있는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보조사제 녹음시작하겠습니다.”

 

 

 

    그리 강한 악령도 아니었고 부마자의 육체도 건강한 편이라 구마의식이 힘들지는 않을 거라던 김신부의 말대로 의식은 XXX이 짧게나마 공부하며 결론지었던 평균 시간보다 짧게 걸렸다. 구마가 처음이라 XXX이 몇 번 버벅댄 것을 감안하면 더욱 얼마 걸리지 않았단 소리겠고. 김신부는 마저 정리하라며 방을 나섰고, XXX은 헬쓱한 YYY의 모습을 더 지켜볼 수가 없어 그를 더 돌아보지 않고 정리를 끝냈다. 다시금 무거워진 가방을 다시 짊어지고 방을 나서려던 때였다.

 

“....형?”

 

    택운이 형...이야? 가방의 무게가 발에 매달아진 듯 발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XXX은 뒤를 돌아보는 자신의 표정이 과연 어떨지, 거울을 보지 않고서는 자기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 느꼈다. 그만큼 지금 XXX은 툭 불거져 나온 감정이 낯설어서 더 당황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리였다.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요.”

 

    변성기를 거친 듯 무게 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주 낯설었지만 이름을 부르는 어조만큼은 십 년 전과 똑같았다. 너무 똑같아서 XXX은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XXX은 자기가 YYY의 고향 형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상기하려 애썼다. 보조사제로서 해야 할 말들이 머릿속에서 일련히 정리되었지만 입술은 다른 것을 뱉으려 하고 있었다. 침착을 유지하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이 절절해져 갔다. XXX은 입술을 꽉 짓씹기를 택했다. 이리 와요. YYY이 느리게 팔을 벌렸다.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형. 택운이 형, 응? 십 년 전의 YYY이 오버랩됐다. XXX은 제 심장 소리가 이 방을 뚫고 나가 온 땅에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대단한 착각이 들었다. 피부에 닿는 YYY의 나른한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 눈을 감는다면 순식간에 퍼진 심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부릅떴다. YYY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겨우 고개를 앞으로 돌릴 수 있었고, 그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고 말을 듣지 않던 근육들이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펴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책 그만 보고.”

“나랑 놀자.”

 

    낮은 목소리 뒤로 겹쳐오는 맑고 명랑한, 옥구슬 같은 목소리. XXX이 사랑했던 그 목소리는 지금 XXX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았으면 그다음은 문을 당겨 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 고장 난 것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싸늘한 정적 속에서 YYY이 낮게 웃음을 흘릴 때, XXX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갈 수 있었다. 침대에 홀로 남은 YYY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한 집안엔 XXX의 구둣발소리만이 울려퍼졌다. 한 번을 뒤돌아보지 않고 달린 XXX이 도착한 곳은 라온교회였다. 가방을 아무데나 내려놓은 XXX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김신부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교회에는 오지 않은 듯 보였다. XXX은 엎드려 빌었다. 이 불쌍한 것들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부마자 YYY의 집에서 도망쳐나온 XXX이 교회에서 죽은 듯이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답지 않게 동네가 떠들썩해진 이유를 XXX은 신부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구마사제 김신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그 사흘 동안 누가 뭐래도 교회를 절대 벗어나지 않던 XXX은 딱 사흘 전 장엄구마를 진행했던 그 집으로 다시 내달렸다. YYY을 구마했던 그 방에 돌아오면 YYY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흘 전의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것 없는 방이 XXX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쑥 나타난 손에 검은 수단자락이 꽉 붙잡혀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매다 꽂힐 때쯤에야 XXX은 악령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짜고짜 바닥에 내던져진 몸이 아팠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랑 놀자고 했잖아.”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XXX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옷자락을 붙들은 힘이 아주 억셌다.

 

 

 

    YYY이 XXX을 어깨에 들쳐메자 교회에서 지내던 사흘 동안 뭘 제대로 먹질 못한 XXX은 확 돌아가는 시야에 밀려오는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꽤 긴 시간을 수면과 혼절 사이에서 보내는 동안 XXX이 기억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기력이 전혀 없어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가만히 누워있던 XXX에게로 다가온 YYY. 그가 종아리 부근을 잡고 뭔가를 덜그럭거리는데 XXX은 그제야 거추장스러운 금속 덩어리가 발목에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고, YYY은 발목에 채워진 그 족쇄를 풀어주면서 밀어를 속삭이듯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택운.’

‘가서 말해.’

‘구마에 실패한 부마자가 다시 나타났다고, 말해.’

‘그리고 네 손으로 직접 끝내.’

‘이 육체를.’

‘네가 사랑하는, 한상혁을.’

 

    그리고 다시 정신이 들은 지금, 족쇄는 정말 엉성하게 발목에 걸려있다. 당장 빼려고 하면 얼마든지 뺄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XXX은 족쇄를 벗어버리지 못했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누구의 몸도 아닌 YYY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XXX은 엎드려 울었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단순하기만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XXX은 그럴 수 없었다. XXX은 지금, 신을 저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중에서도 아주 더럽고 추악한 인간이라, 십 년 동안 떨쳐내긴 커녕 더 지독하고 진득하게 굳혀온 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도록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XXX은 결국 제 손으로 직접 제 발목에 족쇄를 꽉 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YYY은 비틀리게 웃었다. 어리석은 인간. 그는 며칠동안 먹지도 씻지도 못해 마르고 엉망인 얼굴을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주 어리석은 인간. 자신을 감싸오는 손길에 가만히 몸을 내맡긴 XXX이 퍽 사랑스럽게도 보였다. YYY은 곧 입술을 아래로 내려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메말라 갈라진 아랫입술을 삼킬 때, XXX은 울컥 차오르는 거부감에 몸을 비틀었지만 YYY에게 단단히 붙잡힌 바람에 가까이 다가온 너른 어깨를 쥐는 것이 전부였다. 입술이 떨어지고 붙잡힌 얼굴이 놓였을 때 XXX은 바닥에 널브러져 헛구역질을 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신물이 나왔으나 먹은 게 없는 속은 게워낼 것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쓰라린 몸을 일으켜 등에 뭐가 닿는 대로 기대어서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으면 YYY은 더럽지도 않은지 얼굴을 타고 흐르는 체액을 닦아주면서 웃었다. 힘이 쭉 빠지는 듯 무거운 팔을 들어보니 흑갈색 반점이 하얀 피부를 타고 올라있었다. XXX은 저도 모르게 팔을 문질렀지만 차도는 없었다. 모든 게 실감 나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감당하지 못할 두려움이 엄습한 XXX은 YYY의 커다란 손을 붙잡고 울었다. 저에게 기대어지는 작은 머리통 속의 생각들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을 YYY, 악령은, 덜덜 떨리는 새하얀 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괜찮지?”

 

    정택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 이름,

 

“네가 사랑하는 한상혁이잖아.”

 

    한상혁.

 

 

    이 기록은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역사의 밑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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