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푸른닻
@hshstar75
"형, 이제 마지막이야.”
상혁이 든 총의 총 끝이 재환을 향해 있었다. 재환은 기다려 온 일이라는 듯이 순응하듯 눈을 감았다.
상혁아 나는 다 괜찮아.
마음이 깊어질수록 벼랑 끝이 다가올 것이란 걸….널 만나기 결심하면서 다 각오했던 일이니까.
그래서 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런 비참한 결말이라고 해도, 너를 사랑할게.
*
어린 상혁은 고아에 가진 게 없었다. 빵집 앞을 서성이며 케이크를 사 가는 가족들을 구경했고, 불쌍히 여긴 주인이 가끔 내주는 퍼석퍼석해진 빵을 받는 게 가진 것의 다였다. 퍼석한 빵을 먹는 날이면 상혁은, 케이크를 사갈 수 있는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가족이 모여 앉아 초를 꽂아 소원을 빌 수 있을 정도만 되었으면.... 상혁은 퍼석퍼석해진 빵을 두손 모아 쥐고 꺼져가는 가로등을 보며 빌었다. 다른 건 바라지 않을게요. 케이크를 살 수 있는 정도의 보통만 되게 해주세요. 상혁은 얼마 후 자기와 처지가 같은 여느 또래처럼 뒷 골목에 처음 입성하였다.
처음에 시작한 나쁜 짓은 도둑질이었는데,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단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돈은 고작 벌 수 있는게 전부라 느낄 정도였고, 제 몫 버텨 먹는게 전부였다. 상혁은 그래서 더 열심히 나쁜 짓을 했다. 그리고 노력의 결과 였을까. 어느 날 평소보다 특별히 수익 좋았는데, 상혁은 그 돈을 쥐고 곧장 빵집으로 갔다. 매번 서성이기만 했던 빵집에 처음 들어 갈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간 빵집은 생전 처음 맡아 보는,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했는데, 상혁은 다른 빵에는 손대지 않고, 상혁은 거기서 제일 큰 생크림 케이크를 샀다. 케이크를 꺼내 초를 꺼냈는데 상혁은 허전했다. 무언가 아주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초에 빌었다. 보통 사람보다 아주 조금만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뒷 골목에서 굴러 먹던 아이가 크면 하게 될 일은 자연스러웠다. 상혁은 그렇게 19살이 되는 해에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조직에서 하게 된 일은 지금까지 해왔던 나쁜 짓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제 일은 아이가 하는 나쁜 '짓'이었다면 조직에서 하는 일은 정말 나쁜 '일'이었다. 상혁은 견기디 힘들었다. 그냥 남들처럼 조금만 더 욕심낸건데...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다시 케이크가 아니라 퍼석한 빵을 쥐고 싶지는 않았다. 상혁은 버텨야 했고 버티기 위해서, 그이후 많은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걸로 성에 안 차면 처음 보는 약에 손을 대었다. 그 일들은 반복 하다 보면, 머릿속이 어느 순간 회색빛이 되었다. 그러면 상혁은 그때부터 버틸만 했다. 사람을 짓밟는 다는 게. 내가 더 이상 보통 사람이 될 수 없는 괴물이라는 게.
재환을 처음 봤던 날에도 상혁은 취해 있었는데, 흐릿해진 눈으로 멍하니 네온 빛을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손이 괜찮냐 물으며 상혁을 일으켜 세우기 전까지. 상혁은 그 손을 보고서야 제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는 걸 깨달았다. 상혁은 그런 그의 호의가 고마웠고, 그 날 밤 호의에 상당하는 값을 치러 주었다. 상혁에게 이제 이렇게 본인을 해치며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익숙하고 평범한 일이 되어 있었다.
아마 앞으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잘 잤어요?”
다시 눈을 떴을 때 재환을 만나기 전까지.
상혁은 이제 더 이상 약에 손대지 않았다. 회색빛에 숨는 일은 없었다. 상혁은 재환과 만나며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행복했다.
내가 나의 발목을 붙잡는 불행인걸 알기 전까진
조직에서 가깝게 지내던 형이 죽던 날, 애인을 살리려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던 날. 상혁은 그 날 재환에게 찾아가 형을 잃을까 두렵다 했다. 그리고 상혁을 껴안으며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안심시키는 재환의 눈빛을 본 순간. 상혁은 깨달았다. 내가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이 과연 재환형에게도 행복해지는 길일까.
상혁은 그 후 죄의식에, 피에 흥건하게 젖은 재환을 끌어안으며 절규하며 꿈에서 깨야했다. 며칠간 반복 되자 재환이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쏘라고 했다. 너에게 죽는다면 괜찮을 거 같다고…. 상혁은 절대 그럴 수 없다 생각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
귀를 찢을 정도로 큰 파열음이 들렸다. 고통이 통점을 넘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벌써 느낄 새도 없이 죽어 버린 걸까.
재환은 어둠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눈을 떴다. 어둠 대신 흰 셔츠를 붉게 물들이고 웃고 있는 상혁이 보였다.
새빨개진 입술에 피를 뱉으며 웃고 있었다. 상혁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재환은 눈물로 젖어가는 지금이 원망스러웠다. 빨리 119를 불러야 하는데....조금이라도 상혁을 눈에 더 담아야 하는데...
형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 다시 비참한 끝을 내어야 한다 해도 이기적이지만 다시 형을 만나고 싶어.
처음부터 내가 갖고 싶었던 보통은, 케이크가 아니라 케이크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