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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 l’amour noir: 검은 사랑을 위해

라빗트

@ravight0215

홍콩행 비행기 안이였다.

“이제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겠지.”

아니, 없어야만 해. 원식은 모자를 고쳐쓰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Pour l’amour noir: 검은 사랑을 위해

 

“Oh là là! Que je suis ravi!’’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야!)

’’형이 라비야?’’

’’반갑다고 새끼야.’’

공항을 나오자 양팔을 벌려 날 반기는 학연이형에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어쩜 형은 변한게 하나도 없어. 원식이 일부러 싫은 체를 하며 피하니 금세 눈썹을 늘어뜨리며 서운한 기색을 풀풀 풍기는 학연에 못이기는척 품을 열었다.

야 세상에 이런 보스가 어디있냐. 이렇게 친히 마중도 나와주고 나 이래봬도 되게 바쁜 사람이야. 나밖에 없지? 미끄러지듯 출발한 차안에서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보스가 쉴새없이 내는 생색에 원식이 운전사를 부른다.

“저기”

“왜? 원식아.”

“아니 형말고.”

“네. 부르셨습니까?”

“차 세워.”

“뭐? 아니, 세우지마.”

“형 제발 좀!! 반갑던것도 다 사라지겠어. 좀 적당히 해.”

또또 이럴때만 저런 눈이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나직하게 이름을 불러오면 원식이 그때만큼은 어쩔줄 모른다는걸 학연은 너무도 잘 알고 잘 이용했다.

“라비야 라비야 미안해. 사랑해, 보고싶었어.”

이럴땐 꼭 라비라고 부른다. 제가 직접 지어준 이름을. 내가 사랑한 아이, 나를 홀려버린 아이라며 붙혀준 이름은 붙여준 것이 무색하게 그누구도 함부로 부를수없었다. 오로지 보스만이 비밀인양 불렀다.

그래, 세달이면 충분히 조용히 살았지. 소유 카지노를 둘러보고있는데 원식을 발견했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여유롭게 포커를 하고있는. 웬일이래, 저렇게 차려입고. 학연이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갔다. 게임이 한창 진행된건지 이미 패를 놓은 사람도 있고 마지막 그 남자의 정면에 앉은 아저씨까지 다이를 뱉어내고야 천천히 카드를 펼쳤다. 확정된 승리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이게 뭐야, 이딴 패를 들고있었다고?”

“옆에 분들이 먼저 겁을 집어먹고 죽으시길래 뭐.”

속은 사람이 멍청한거죠, 어깨를 한번 으쓱하곤 앞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칩을 제쪽으로 우르르 끌어오는 손목을 그 아저씨가 잡아챘다. 그렇겐 안되지, 우리도 상도덕이란게 있는데. 우릴 속였잖아.

“하아, 자기가 멍청해서 져놓고 꼭 속임수니 핑계는 참.”

“뭐 이 새끼야? 지금 말 다했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

“나이가 벼슬인가, 꼰대 진짜,”

점점 높아지는 언성에 뒤에 서있던 책임자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재수없게.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일 없게 관리를 잘했어야 하는데,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갈게.”

시발, 좆됐다를 속으로 되씹으며 책임자가 학연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떼거지로 다가오자 진상아저씨가 놀란듯 움찔거렸다. 죄송하지만 건물내에서 싸움은 금지입니다, 손님.

“끌어내.”

“뭐? 니가 뭔데? 못 나가!!!”

나이 먹고 화통만 성장했는지 건물이 떠나가라 악을 쓰는 진상을 조직원 둘이 끌고 나가고 그제야 내부가 정리되었다.

“블랙리스트 올리고, 라비야 넌 나 좀 보자.”

원식과 함께 집무실에 들어온 학연이 문앞에 서있는 부하를 불러 커피 두잔을 부탁했다.

“심심해? 좀이 쑤셔? 무슨 불만 있어?”

“아니 뭐 딱히 그런건 아니고.”

똑똑,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커피 두잔을 든 남자가 들어섰다. 학연과 원식의 앞에 커피잔을 내려주곤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한상혁, 쟤가 운전해줄거야. 이동할 때 같이 움직이면 돼.”

“어? 갑자기? 뭘.”

그러니까 사실은,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라비의 눈치를 보며 끝도없이 질질 끌려졌다. 마카오, 조직, 마약, 거래, 쥐새끼, 실패, 일련의 유효한 단어들만 골라듣다 참다못한 원식이 말을 끊었다.

“됐고 결론이 뭔데?”

“우리편이 확실히 보장된 사람이 필요해, 그게 너고.”

“아까 걔는 믿을만해? 상혁인가 뭔가하는 애, 같이 다니라며.”

“믿을만 해, 이때까지 키운 애들 중에서 제일 똑똑해. 도움이 될거야.”

오케이, 디데이가 언젠데? 묻는 원식에 학연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일주일뒤에."

어이없단듯 눈을 크게 뜬 원식이 곧이어 물었다. 장소는?

"마카오. 지금 일정이 싹다 꼬인 상태야, 저쪽에서 심어놓은 쥐새끼를 이틀전에야 잡아족쳤거든.”

"아니, 그 새끼는 왜 하필 거래 코앞에 나두고 걸렸대?"

모른채로 뒤통수 맞는것보다야 낫지만, 쥐새끼 한마리밖에 없었어? 하나만 심어놨을리가 없는데...

"지금으로선 한놈이야, 얼마 더있을지도 몰라. 위험하다고 나는 너 이번에 안 갔으면 좋겠어, 니가 싫다고 하면 안 해도 돼, 안 하면 안돼?"

"애도 아니고 나 못믿어? 나 원래 현장 뛰던 사람이였어, 저격 내 정성에 안맞는거 누구보다 잘 아는게 형이잖아.나 할수있어."

"너를 못믿는게 아니라, 알지, 잘 알지,누구보다 잘 알지. 근데 그게 이번은 아니였음 좋겠어.너무 위험해."

언제나 위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겁없이 밀고나가는 학연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믿을 놈 하나 없고 지켜야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때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약점은 생기기 마련이고 지키고싶은 사람은 생길수밖에 없으니까.

유난스러워. 원식은 생각했다. 어린 애도 아니고 학연과 갖은 고생을 함께했는데 저를 지켜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게 싫었다. 누구보다 건장한 남성인데, 심지어 학연보다도. 생각해보면 어릴적부터 늘 그랬던것 같다.

아주 어릴적부터 언제나 함께였고 언제나 학연이 지켜줬다. 그저 막연히 나이가 많아서 였을까, 많아봤자 얼마나 많다고. 형이라는 사명감때문이였을까, 언젠가부터 싸고돌더니 급기야 현장을 뛰지 못하게 했다. 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그때부터였나...

 

 

계획을 바꾸고 준비를 하는 새에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드디어 디데이. 목표는 거래의원만한 성공, 불가능하다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잡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숙소도 일부러 따로 잡았다.

'상혁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꺼야. 난 못가니까 거래끝나면 바로 그 차 타고 돌아와.'

다섯살 난 아이 심부름 보내듯 걱정을 하던 학연에 괜찮을거라고 겨우 안심을 시키고 묵직한 가방을 고쳐잡고 출발했다.

시끄러운 번화가를 벗어나 외진 곳,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를 곳에 깔끔하게 넘겨올린 머리와 단정하게 차려입은 수트, 혹시 몰라 챙겨넣은 권총까지, 오랜만에 직접 뛰는 임무에 평소보다 더 긴장한채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물건은 확실해?"

영화속 고리타분한 대사같은 걸 뱉으면 그쪽에서 가방을 확인시켜주고,

"돈은?"

거래는 순조로웠다.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고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확인시켜주고 순조로워도 너무 순조로웠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이렇게 순조로울리가 없는데, 정말 한놈만 심어놓은걸까. 거래가 끝나고 다 스러질것 같은 건물을 나서면서까지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태연한척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있었지만 오른손은 언제든지 총을 뽑을 준비를 하고있었다. 잔뜩 세우고 있던 날이 차에 타서야 스르륵 풀어졌다. 뒷좌석에 풀썩 주저앉으며 휴대폰을 확인한 원식이 눈동자를 한바퀴 스윽 굴렸다.

"형님, 미행이 붙었습니다.”

원식의 핸드폰에도 학연으로부터 똑같은 의미의 문자가 와있었다. 미행이 붙었으니 조심하라고, 약같은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도망치라고. 애써 침착하게 보냈지만 군데군데 난 오타에서 조급함이 보이는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찢어지자. 넌 물건 가지고 돌아가고 난 물건을 가지고 있는척 하고 알아서 돌아갈께. 넌 최대한 미끼를 끄는것처럼 돌아다녀, 난 어차피 발견돼도 물건이 없다고 해서 죽이지는 않을꺼야.”

여분으로 준비해둔 검은 가방을 들고 상혁과 원식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혼잡한 번화가에 차를 세우고 상혁이 일부러 편의점에 들어가 물건을 사며 이목을 끄는 사이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원식은 빈 가방을 손에 들고 자연스럽게 인파속으로 파묻혔다.

학연은 지금 마약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용이야, 라비가 사라졌다. 학연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연락이 되지않았다. 애저녁에 물건을 가지고 돌아온 상혁이 말하기를 이 물건에 자기 목숨이 달려있으니까 꼭 제대로 학연의 손에 쥐어줘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고한다.

목숨? 학연이 가방을 낚아채 뒤집어 내용물을 다 쏟아냈다. 하얀 봉지더미속 팔랑 떨어지는 종이 한장.

[구오문마두]

“가자.”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거래를 한 그 조직은 생각보다 더 더러운 곳이였고 아무 명분없이 사람을 죽일수도 있다는걸.

한발의 총성에 눈앞이 점멸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원식을 보던 학연의 눈동자가 절망과충격으로 가득찼다. 귀가 멍멍한 것 같기도 했다.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바닥에 부딪쳤다. 암흑뿐이였다.

시뻘건 피가 왼쪽 옆구리부터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아직 살아있단걸 증명이라도 하듯 쓰러진 인영주위로 피웅덩이가 계속 영역을 넓혀갔다.

“안돼!!!”

눈물을 흘리며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쓰러진 사람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안돼, 원식아, 죽지마, 내가 잘못했어. 손으로 아무리 막아봐도 부질없이 손을 적셔가는 액체에 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제발... 조금만... 조금만 버텨줘. 제발 원식아.”

노력이 무색하게 힘을 잃어갔다. 마침내 눈을 뜬 원식이 천천히 손을 들어 학연을 저지했다. 이제 그만. 그의 눈빛이 말해왔다.

“아니야, 아니야, 살 수 있어, 제발... 어? 제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쓰다듬자 붉게 핏자욱이 남았다.

“닦아주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 미안.”

“곧 사람이 올꺼니까 제발, 제발 조금만 버ㅌ”

“형...”

힘 없는 손이 학연의 뒤통수를 눌렀다. 다 트고 거칠어진 입술이 맞닿았다. 짠맛만 느껴지는 입맞춤이였다. 천천히 입술이 떨어지고 온기를 잃은 손이 중력을 받아 툭 떨어졌다. 오년전쯤에 맞춘 반지였다. 이런걸 남사스럽게 왜 맞추냐고 하더니 원식은 단 한번도 뺀 적이 없었다. 네번째 손가락에 끼고있는 반지를 보며 식어가는 몸을 붙잡고 학연은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기분 나쁜 쇠냄새가 검은 수트에 배어들었다. 씻어낼수 없도록. 죽어도 잊지 못하게 지독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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