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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요람

@Obedience_Faith

뛰지 않는 심장을 편평한 가슴 위로 매달고 사실은 그것이 어디까지든 아쉬워 남의 것을 탐하는 생. 아지랑이 핀 7월의 아스팔트 길 위에서 운 좋게 얻은 목숨이니 그거 이외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도 괜찮았다. 우리는 날 때부터 출처 모를 개새끼였고, 그러니 번듯하게 살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이 태어나서 곧바로 죽지 않은 것에 하루하루 머리를 조아리기에 바쁜 가긍한 치들일 뿐이었다.

 

 

 

개의 요람

 

 

 

죄악은 신물처럼 밀려와 무력한 식도를 내려가지 못하고서 두서없이 솟구쳤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불가항력이다. 하는 수 없이 발치에서 두어 걸음 벗어난 하수구를 찾아 고개를 처박고 구토하는 데에 열중했다. 햇볕이 드는 곳에 가 있노라면 노오랗고 기분 나쁜 배색의 빛줄기가 안 그래도 별 볼일 없는 몸뚱어리를 수천 가닥으로 찢어놓을 것만 같아서, 찾아든 곳이 골목 어귀의 인적이 드문 하수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어둡고 검은 곳 속에서만 비로소 정박의 호흡을 찾아 숨 쉴 수 있는 습진한 삶. 그런 가련한 숨들의 중심에 기둥이 되어 박혀 있는 기랑(飢狼)은 이름처럼 주려있는 짐승 새끼들의 거처이자 유일한 쉼터였으니 그 속에서만이 학연이 존재하고, 학연의 생 또한 있는 것이었다.

 

신 내 나는 토사물을 한 뼘 옆에 둔 아스팔트 바닥으로 학연은 맞붙인 이마를 긁어가며 앓았다. 목구멍이 틀어 막히면 괜스레 눈물이 밀리는 탓에 무력감에 휩싸이기 쉬웠다. 해를 먹을수록 불안과 설움이 교차하는 주기는 짧아짐에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대야의 아릿한 계절은 벗어날 길 없이 학연의 덜미를 잡아 물고 있었다. -지이잉, 지이 잉, 부숴먹은 휴대폰의 화면 위로 계속해서 전화가 울린다. 손톱에 눌린 손바닥이 허옇게 질려갔지만 이대로 피가 샌다 하여도 무감할 만큼 몸을 일으키기 겨웠다. 벽을 눌러 쥐고 선 채로 한참 방치되어 있던 폰을 주워들었다. 발신인은 예상에 오차 없이 좆같은 새끼였다. 태영.

 

안 기어들어오고 뭐 해.

작업 덜 끝났어.

요즘 대가리 제대로 못 굴린다는 거 사실이었네.

…….

삼촌들은 이미 도착했어. 혼자만 작업 덜 끝냈나 봐.

…….

…학연아.

 

이러다간 너야말로 제 명에 못 뒤지겠다. 그리고는 뚝, 태영이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시켰다. 전화가 끊기고도 학연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 명이라는 것은 뭘까. 애초에 이런 무법지대에서 살아가는 것들에게 정해진 수명이 존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자정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름에 끼인 하늘이 꼭 비가 올 것처럼 울었다. 문득 재환이 저를 데리러 오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잠시 했으나 곧 그만 뒀다. 그런 것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연은 공기 중에 스미는 비린내를 코끝으로 훑으며 홀로 방향 잃은 걸음을 재촉했다.

 

주워 먹을 사탕이 동났다면 남의 것을 빼앗는 게 이곳에선 곧 이치라고들 했지만 학연은 이 나이를 먹고서도 이치가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다. 어쨌든 그것이 기랑에서의 암묵적인 언약이고 본능이고 또 그렇게만 길러진 지가 벌써 십 년을 훌쩍 넘겼으니 이미 스스로 무감해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대신에 가끔 스스로를 세계의 이물질 정도로 취급하게 되는 것은 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원스럽지 않은 패턴의 하와이안 셔츠에 벅벅 피를 문질러 닦고 눈을 부빈다. 그럼에도 시야에 끼는 이물감을 떨쳐내기는 힘들었다. 셔츠 위로 파다하게 그려진 하얀색 아메바에 검붉은 핏자국이 묻어나는 중에도 가로등을 피해 걸을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닮아 언제부터 이리도 추하게 자라버린 것일까. 하지만 지금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고 또 학연이 이제는 너무 지쳐 있었다.

 

건물을 향하는 내내 복통으로 몸을 떨면서 원흉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드디어 한계치를 넘어갔기 때문인지, 때마침 밀려온 태영의 역겨운 설교와 가증이 까닭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태영 자체의 문제였던 것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이 한 데 뭉친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학연은 뒤늦게 후회했다. 통화를 받는 내내 턱밑까지 차오른 말을 차라리 뱉어둘 걸 그랬다고.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속이 뒤엉키지는 않았을 텐데. 학연은 태영 같이 쓸 데 없는 감성으로 똘똘 뭉친 종자들을 미워했고, 미워하고, 증오했고, 증오하며, 혐오하고, 또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는 죽여 버리고도 싶어 했다.

 

원래 챙기던 새끼들 보모 노릇이나 계속하지 왜 나한테까지 생에도 없는 부모처럼 굴어 태영아 같은개새끼주제에진짜좆같게…….

 

 

 

*

 

 

 

어제보다 다섯이나 적은 수의 아이들이 웅크려 잠을 청하는 기랑에서는 오늘도 비명과 괴성이 끊이질 않았다. 애초에 적막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하긴 했다. 그리고 학연은 어제 저녁 다섯 명의 아이를 강물에 던져놓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떠나 온 장본인이었다. 삼 년 전부터 앓고 있는 불면증은 어제 같은 날이면 더욱 더 지독한 상태가 되곤 해서, 들어오는 길에 약방 삼촌에게서 졸피뎀을 받아와 몇 알인지도 모르게 입 속으로 밀어 넣었었다. 그리고 겨우 잠에 든 것이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느지막이 돌아온 재환이 새벽부터 학연을 흔들어 깨웠다. 몽롱한 기가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재환의 입이 버끔거리고, 혀가 굴러가는 모양새를 천천히 바라보면서 학연은 나른히 눈을 깜빡였다. 힘없이 무너지려는 양 어깨를 붙잡고 시선을 찾아 무는 재환에도 달리 취해야 할 모션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뭐라도 뱉었던 것 같다. 너… 오늘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그러자 한동안 대답이 없다. 태영이가 전화했어요. 그렇구나. 통화로 어디까지 지껄인 것인지는 구태 묻지 않았다. 그런데 재환아, 나 오늘 너무 피곤한데. 동시에 어깨 위로 속절없이 머리를 떨어뜨리자 알싸하고 독한 향수 냄새가 직접적으로 폐부를 감쌌다. 겨우 입을 떼고 또 겨우 몇 마디를 하면서도 눈앞이 돌았다. 그게 아직 약 기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따라 유독 재환의 향수 냄새가 탁했기 때문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재환은 그런 학연을 떼어내지 않고 탁상 위의 약통을 쥐어 든다. 알게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 바로 근처에서 울렸다. 응, 근데 형. 제발 이런 것 좀 받아오지 마요.

 

글쎄 재환아 네가 그런 쓸데없는 걱정만 하지 않아도 나는 정말 괜찮을 텐데. 조금만 더 정신이 있었더라면 학연은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며칠 만에, 그것도 일이 다 끝나지도 않은 채로 갑작스레 돌아와 한다는 것이 피로에 쩐 저를 굳이 깨워 시비하는 일밖에는 없었던 걸까. 불현 듯 화증이 치밀었으나 가능하다면 오늘은 조용히 끝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재환은 눈치 없이 약통의 내용물을 전부 쓰레기통으로 쏟아 부으면서 지껄였다. 꼭 저가 더 화가 난 것처럼 굴기까지 했다. 학연을 보는 시선이, 그것이 마치 연민처럼, 사랑처럼, 그런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꼴을 지켜보면서 첫 번째로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언제부터 이렇게 역겹게 행동할 줄 알게 되었냐는 거다. 재환이 너는 우리가 꼭 뭐라도 되는 것 같지 여기 있는 이 애들과 내가 네 가족이라도 된 것 같지 한 십 년을 부대끼며 사니까 이제는 진짜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고 그러지? 재환아 그거 아니야 틀렸잖아 우리는 그런 거 아니잖아. 여기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유대감이나 정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었다면 나는 어제 같은 일을 지시 받지도,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요 몇 달 너는 이곳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게 네가 여태껏 착각하고 있는 그 사랑이라는 것 때문인지 다른 모종의 이유까지 합쳐진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너를, 그리고 우리를, 이토록 위태롭게 하는 건지 학연은 괴로웠다.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해.”

“…….”

“그럼 간만에 씹이라도 뜰래?”

“…….”

“너랑 하고 나면 그래도 항상 잠은 잘 잤잖아.”

“……형.”

“으응 재환아,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좆같으면 니가 대신 나 좀 재우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 말이다. 재환은 학연에게 고백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와 섹스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그만 뒀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전에는 명분 없이도 잘만 하던 짓을 이제와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이 학연은 우습기만 하다. 못 하겠지 이재환. 그럼 적당히 하고 돌아가. 여긴 네가 걱정할 거 하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파묻었던 고개를 들고 재환을 바로 마주한다. 그 순간 재환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어째서인지 명확히 정의 내릴 수가 없지만 조금, 지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학연은 그런 재환을 두고 느리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야 한 시라도 빨리 재환이 떠날 것 같아서.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쉽게 제자리를 찾아갈 것 같아서. 가슴께로 뻐근하니 통증이 밀려왔다.

 

 

 

*

 

 

 

기랑은 이 바닥에서 일어나는 모든 가장 밑바닥의 일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대형 제약 회사에서 남모르게 파생된 조직으로 작게는 사채업에서부터 크게는 마약 밀반입, 불법 카지노나 사창가 운영까지 도맡았다. 본사는 기랑에게 눈에 띄지 않는 작고 스러져가는 건물 하나와 한정된 액수의 운영비를 달에 한 번씩 보냈다. 그래서 언젠가 길바닥에 버려지거나 익사된 채로 강 위를 둥둥 떠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인간들을 주로 부렸다. 사회적으로 마땅한 신분이 부여되지 않은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 원래는 이미 다 죽었어야만 하는 아이들. 학연이나 재환, 그리고 태영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주워진 아이들 대부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할 이름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야, 너, 등등으로 불리던 시기를 거치고 저들끼리 바닥에 몇 자를 끄적이며 이름을 지었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별 의미가 없었다. 기랑에서는 자주 물갈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신나서 이름을 불러대며 방방 거리던 놈들은 거의 열다섯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됐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약을 운반하는 일부터 잡스럽게 신경 써야 할 일이 성년보다 배로 많았기에 빈번한 물갈이를 피해가기 위해서는 더 악을 쓰고 대가리부터 빨리 자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이가 차면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떠드는 것 대신 담배를 배우고 칼을 쥐는 법을 익혔으며 단번에 목을 따는 방법이라든가, 장기를 파내는 요령 따위의 것들을 배웠다. 도망을 가려던 연놈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진즉에 그 잔꾀를 들키고 죽어버린 사례가 많아 티가 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학연은 멍청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도리어 속으로 한참을 비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스레 인원 물갈이와 처리는 학연의 일로 들어가게 됐다. 그가 막 열여덟을 먹었을 때의 일이었다.

 

태영과 재환은 의외이게도, 사채업이나 해체 팀에 넘어가지 않았다. 재환은 도박장 운영이나 마약 관련 일을 맡는 클럽에서 주로 활동했고, 태영은 아이들을 관리했다. 어릴 적 자신이 배워온 모든 더러운 일들과 범해온 죄들을 밑으로 밑으로 그렇게 내려 보내는 일을 했다. 따라오지 못하는 것들은 학연의 선에서 빠르게 정리됐다. 그런 식으로 기랑은 여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 있는 모두는 감정이나 사사로운 정에 무디게 자라왔고, 각자의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태영은 예외적인 케이스다. 학연은 그를 아마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특하고 영악한 한태영. 기랑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삼촌들 -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의 앞에서는 누구보다 말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돌아서면 아니었다. 자꾸만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려고 하고 있었다. 학연에게까지 괜스런 죄책감을 물려주기라도 하고 싶은 듯 굴었다. 그 애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가족 놀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유치하고 멍청하고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어? 학연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때마다 태영은 늘 그에게 이해하지도 못할 것들을 강요하곤 했다. 가령은 정이라든지, 죄책감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 그럴 때면 학연은 꼭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서 태영을 깔볼 수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누구한테 탓을 돌리는 거야 태영아. 하나라도 덜 죽이고 싶음 너야말로 애들 관리 똑바로 해.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다. 피 냄새나 비명 같은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런 태영에 이제는 학연까지 점차 동화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까지 눌어붙는 이물감에 온 몸이 벌레라도 먹은 듯 간지러웠다. 붕괴를 인지한 순간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불현 듯 가슴 위로 얼룩지는 이재환이 또 한 번 학연의 멱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잴 것도 없이 순식간에 불어 닥치는 폭풍으로, 그 지옥 속으로.

 

사랑해서 그랬어요, 형을.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다. 끝내 놓지 않고 있던 평정심이 끊어진 순간이었다. 비참과 애절함으로 점철된 재환이 홍수처럼 범람하기에 학연은 그것에 잠겨 죽기 전에 어떻게든 먼저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그 재난 같은 언어의 무게는 이렇게나 버겁고 가파른 것이었다. 감당하기에는 벅찬 강도로 학연을 짓눌러 왔다. 기분 나쁜 기시감이 발목을 타고 올라와 몸을 떨며 입을 막아보아도 끔찍한 울음이 샐 것만 같았다. 정말 이대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견뎌낼 수 없다고, 그러나 피해갈 수도 없다고……, 사랑, 사랑이라고……….

 

 

 

*

 

 

 

한 달이 겨우 지났을 뿐인데 또 다시 지시가 왔다. 태영은 그날따라 더 이상했다. 이상하리만치 집중하지 못했다. 물건을 챙길 때마다 몇 가지를 꼭 까먹어서 담당도 아닌 학연을 고생시키기도 하고, 겁을 잔뜩 먹은 애새끼마냥 다리를 떨기까지 했다. 기묘했다. 어쩌자고, 이제 와서 또 뭘 어쩌자고. 학연은 해가 저물기까지를 잠자코 기다릴 뿐이었다. 재환은 맡은 일의 특성 상 외박이 잦아 한바탕 말씨름을 했던 그때를 마지막으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꼬박꼬박 다시 약을 받아먹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학연아.”

 

소파 위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태영이 웅얼이듯 이름을 불렀다. 학연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오늘 같이 일을 전담하게 된 두어 명의 아이들에게 말한다. 해지면 갈 거야 빼먹은 거 없지. 인원 수 잘 파악해, 한 놈도 빼놓지 말고. 태영은 그 이후로 더는 말이 없었다. 일부러 더 보란 듯이 얘기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유난히 상태가 좋지 않은 태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왜 그러는데. 그러나 학연이 차마 뱉기도 전에 태영은 겉옷을 챙겨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무언가 뒤틀리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점심부터 벌써 다 태운 한 갑의 담배가 재떨이에 마구잡이로 파묻혀 있었다. 재떨이를 비우려던 아이가 불씨가 채 꺼지지 않은 마지막 개비의 담배에 손가락을 다쳤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파열음과 귀 찢어지는 악 소리가 일사분란하게 휘돌았다. 시계는 곧 7시를 가리켰고 때마침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학연은 마지막으로 재떨이를 깨뜨린 그 아이까지를 태우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폐쇄된 터널의 앞까지 오게 되었을 때 천천히 속도를 줄이던 학연은 난데없이 뒤를 박아오는 차량에 앞좌석으로 고꾸라졌다. 차체가 크게 흔들리고 운전석에 있던 놈들은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 가벼운 욕설을 짓씹으며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내렸다.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할 위인으로서는 단 한 명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예상에 들어맞게 뒤편의 차에서 내린 태영이 피가 새는 이마를 방치한 채로 학연을 향해 걸어왔다.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 물어도 상태가 예사스럽지 않다. 얼굴 전체가 피와 눈물 같은 것들로 범벅이었으며 걸음걸이마저 반듯하지 못했다. 웬만해서는, 태영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었다. 차체 박은 건 실수였다고 치고 지금 그냥 돌아가면 정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영아, 아직 아무도 안 봤으니까 그거 내려놓고 그냥 가. 태영은 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총을 들고 있었다. 학연은 침착하게 재환에게 문자를 보냈다. 재환이 불렀어 다른 한 대는 걔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거 타고 돌아가. 이 씨발 한태영, 태영아 어 그냥 제발 좀 돌아가라고, 가라고, 가라고 가라고! 그 순간 학연이 타고 온 차의 문이 열렸고, 상황을 인지한 애 몇이 하나 둘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모든 것을 그르칠 것 같은 느낌에 학연은 재빨리 쥐고 있던 나이프 한 자락을 던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총성이 울린다. 빗나가는 행운을 바라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까, 총구를 통과해 뻗어 나온 총알은 학연의 오른쪽 어깨 죽지를 그대로 관통했다. 던진 나이프는 목표를 조금 빗나가 아이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 떨어졌다. 멀리서부터 태영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모든 감각이 순식간에 멍멍해지고, 점멸한다. 학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에도 새나오는 고통에 몸을 비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영은 여전히 제 정신이 아니다. 약을 했다는 것은 이미 진즉에 알았다. 개새끼, 개새끼, 개새끼. 예전부터 도움 되는 일이 없었다, 한태영은. 그리고 계속해서 답지 않은 일만 하고 있는 저도 어떻게 되어버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일수록 빨리 물들었다. 태영은 그런 전염병을 학연에게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돌려보낼 생각 같은 것을 하지는 말아야 했던 건데. 차체를 박은 그 순간부터 이미 한태영은 악이고 죄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범한 변절자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아스팔트 위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학연은 그 더운 열기에 묻혀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말로써 투명히 내뱉을 수 없는 고통을 삼켜가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학연은 저를 지나쳐 차를 향해 걸어가는 태영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실패했다. 어찌 저찌 지금껏 잘 버텨왔다고는 해도 이미 실패한 것이다. 너는 연민과 정에 묻혀 본질을 잃었다. 나는 그런 네게 불가피하게도 물들어버린 더 어정쩡한 불한당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불가항력이었다. 차를 향해 다가가는 어깨를 잡아당기자 태영은 발작하듯 돌아서서, 학연을 넘어뜨리고는 그 위를 올라탔다. 생에 없이 울고 있는 학연의 모습에도 동요하지 않고 총구를 이마에 갖다 댄다. 지금 이 순간 태영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학연도 물론 알고 있었다. 끝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손 쓸 수가 생각나지 않은 것은 정말 간만의 일이었다. 뜬 시야 너머로 보이는 태영의 얼굴은 화면을 통해 보듯 선명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켜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새까만 것 같기도 했다. 그게 꼭 그동안의 태영의 감정의 골처럼 깊고도 검어서. 그제야 학연은 제대로 태영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모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치들이었지. 하지만 너는 아니었다. 너는, 너만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아이도.

 

……그래, 그 이재환도.

 

굉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학연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바람이었는지 현실인지 여전히 시야는 먹먹하기만 했다. 멀찍이 재환의 목소리가 들리고 태영은 학연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학연은 온 몸으로 태영을 뒤집어쓰고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몸은 이미 너무 많이 무거워져 있었고, 머리는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다. 여태 걸린 적 없던 열병을 지금에서야 온전히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두서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무력하게 얼굴을 적셨다. 울음을 삼킨다. 목을 긁어가며, 이를 부닥쳐가며.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재환이 엎어진 태영을 학연의 위에서 떨어뜨린다. 지혈하지 않은 어깨에서는 여전히 피가 새고 있었다. 재환은 미친 것처럼 자꾸 같은 말만 반복했다. 괜찮아요 형 괜찮아요 괜찮아요 금방 돌아가요 우리…….

 

재환아.

 

학연은 그런 재환의 앞머리에 손을 뻗는다. 머리칼 사이사이 얽히는 감각이 현실감 없었다.

 

오늘도 사랑해?

 

여전히, 아직도.

 

사랑하고 있어?

 

재환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고 학연을 끌어안았다. 낯설면서도 미약한 온기가 남은 그 품속에서, 학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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