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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Dolce

신셋콩

@setkkong29

" 또 보네요, 이형사님. "

" 그러게요. 그만 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

"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

 

말과는 반대로 미소 지으며 하는 택운의 말에 홍빈이 미간을 좁혔다.

 

" 또 인신매매. "

" 무서운 말 하신다, 형사님. "

 

책상 위에 놓인 몇 장 되지 않는 종이를 무미건조한 눈으로 뒤적거리며 간결한 내용을 몇 번이고 읽어보던 홍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 당신 이름은 하나도 없네요, 정택운씨. "

" 내가 벌인 일이 아니니까요. "

" 당신 밑에 있는 애기들이 벌인 짓이죠. "

" 그런가요? 그럼 그 새끼들 족치고 전 좀 놔주실래요? "

 

무례한 택운의 언행에도 홍빈은 화를 내거나 하는 일 없이 한숨만 내쉬며 취조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온 택운은 다시 한 번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홍빈의 어깨를 토닥였다.

 

"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이홍빈 형사님. "

 

 

 

***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 듯 방문하는 범죄자들은 어린 새끼가 어미를 찾듯 특정 형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택운과 홍빈이 이와 같은 경우였다. 직업이라고 하기에도 웃긴 택운의 일의 특성상 경찰서를 들락거릴 만한 일을 하는 게 잦았고, 택운은 그때마다 홍빈을 찾았다.

 

‘ 이홍빈 형사님 불러다 주세요. 그 전엔 한 마디도 안 할거에요. ‘

라고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며 택운은 정말로 홍빈이 얼굴을 비출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택운이 홍빈에게 정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고, 홍빈 또한 미운 정도 정이라고 택운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귀찮은 얼굴을 하고서 하던 일을 중단하고 서로 돌아왔다. 하지만 홍빈이 택운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머리가 좋은 택운은 제 손을 직접 쓰지 않았다.

 

대부분 자신의 밑에 있는 부하를 사용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골라 경찰들의 눈을 피해 활동하고는 했다. 만약 발각이 된다 하더라도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교묘하게 법을 피해가며 오늘처럼 능구렁이와 같이 당당하게 빠져나갔다.

 

얼굴이 잘 알려진 조직의 머리가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것은 아주 흔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택운은 꼭 홍빈의 얼굴을 보러 놀러 오는 것처럼 행동했다. 긴 시간을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안부를 전하러 오는 것처럼 얼굴을 비추고 역시나 건질만한 성과가 없어 허탈해하는 홍빈의 표정을 보면 만족스러워하며 돌아가기 일수였다.

 

처음에 불쾌해하던 홍빈도 익숙해졌는지 택운의 무례한 태도에도 인상조차 쓰지 않고 작게 한숨만 내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고하라는 택운의 말에 대꾸조차 않던 초반과 달리 ‘ 예, 다음에 봐요. ‘라는 말로 받아 칠 정도가 된 것을 보면 홍빈도 택운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

 

 

 

경찰의 부름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은 얼굴을 한 택운이 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 제 아랫사람이 어색한 걸음으로 다가와 하는 보고를 듣고 바로 얼굴을 굳히며 매서운 눈을 했다. 택운이 안내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자 덩치 큰 남자가 빠르게 손짓하며 앞장을 섰다.

 

구석진 곳으로 들어온 택운이 꽤 낡아 보이는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낯선 공간 안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중년의 남성은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끌려온 것이 분명했지만 남자의 몰골은 크게 상처 난 곳 없이 깨끗했다.

 

택운의 방침이었다. 대부업을 가장한 사채업이지만 지저분하지 않게, 누군가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 적도록 신체에 대한 피해는 최소한으로 할 것. 돈을 빌린 사람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주되 주위 사람들까지 전부 털어버리고 결국에는 스스로가 몰락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책상 위에 정갈하게 놓인 서류를 손에 든 택운은 늘 그래왔듯이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찬찬히 중년 남자에 대한 신상 정보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끝까지 다 넘겨 읽던 이전과는 다르게 가족 관계를 확인한 택운이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서류를 손에 쥔 채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 아드님 경찰이네요? “

“ … “

“ 그렇다고 제가 그냥 넘어갈 거란 생각은 미리 버리시고요. “

 

집의 재산부터 시작해서 배우자, 자식들의 직업 및 처분할 수 있는 재산까지 꼼꼼히 살폈을 평소와 달리 택운은 유독 하나밖에 없는 그의 아들에 중점을 두었다. 택운이 자신의 아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남자가 긴장감에 마르는 입술을 간신히 축이고 처음으로 말을 했다.

 

“ 제 재산으로 안되면 아들이 있으니까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어떻게든… “

" 그러니까 본인은 갚을 능력이 없으니 잘나신 아들을 팔아 드시겠다. "

 

이내 택운의 발 앞에 바짝 엎드린 중년의 남성은 변명의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으며 몸을 떨어댈 뿐이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택운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뒤에 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작은 잭나이프 하나를 손에 올렸다.

 

" 난 원래 남 팔아먹는 짓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죠. "

" ... "

" 그런데 운이 좋은 게 제가 아저씨 아드님한테는 내가 빚을 진 게 좀 있어요. "

 

손 위에서 한참 잭나이프를 굴리던 택운이 남자의 옆에 그것을 떨어트렸다.

남자의 시선이 칼로 향하자 택운이 몸을 낮춰 남자의 앞에 앉았다.

 

" 아드님 손이 참 작고 예쁘더라고요. "

' ...? "

" 손가락 하나 가지면 소원이 없겠어. "

 

 

 

***

 

 

 

“ 그건 또 어디서 구하신 거에요. “

 

술병과 더불어 늘어져 있는 흡사 담배처럼 생긴 하얀 막대기들.

한 눈에 보고 홍빈은 그것이 마약의 일종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 이런 걸 벌여놓고 저를 부르셨어요? 왜요, 자수라도 하시려고요? “

 

비아냥거리는 홍빈의 말투에 남자는 결국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짐짓 화나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도 홍빈은 물러서지 않았고, 그저 한숨만 내쉬며 머리를 짚을 뿐이었다.

 

부자의 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약과 술에 취한 아버지가 홍빈을 부르고, 홍빈은 그런 아버지를 제 손으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저 눈을 감아주며 넘어갈 뿐이었다. 이번에도 홍빈은 한심하게 느껴지는 아버지가 별 뜻 없이 자신을 부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손에 꽉 쥐어진 잭나이프를 보고 생각을 달리했다.

 

“ … 그거 뭐에요, 아버지. “

“ … “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비장한 손으로 날카로운 나이프를 손에 들고 일어난 남자는 그 칼을 홍빈에게로 향했다. 뒤늦게 위험을 감지한 홍빈이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차고 있던 총에 손을 두었다. 두 손으로 작은 나이프를 쥔 채로 정말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듯 똑바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결국 홍빈이 총을 겨눴다.

 

“ … 내려놓으세요. “

“ 미안하다. “

 

처음으로 제게 사과의 말을 하는 남자를 보며 홍빈은 단순히 제게 위협만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자신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칼을 든 채로 서서히 제게 다가오는 아버지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던 홍빈이 벽에 등을 부딪혔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벽에 바짝 제 몸을 붙인 채로 긴장감에 손을 조금씩 떨기 시작했다.

 

서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은 자세에서 홍빈의 눈이 아주 잠시 흔들렸고 똑같이 손을 떨고 있던 남자는 그 틈을 타 홍빈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집 안을 울릴 정도로 커다란 총성이 들렸다.

 

결국 얼떨결에 쏴버린 총을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떨리는 손으로 떨어트린 홍빈은 그대로 벽에 기대 주저 앉았다. 윗옷이 피투성이가 되어 제 앞에 쓰러져버린 남자를 보고 홍빈이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린 홍빈이 순간 문소리를 들었다. 크게 뜨여진 눈으로 문을 바라본 홍빈은 날카로운 끝을 가진 구두를 신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택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조금은 안심하는 듯한 눈을 했다.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꿈틀거리는 남자를 보고 홍빈이 크게 놀라 몸을 뒤로 물렀고, 그런 홍빈을 보며 들어오던 택운은 손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몸뚱이에 힐끗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곧 품 안에서 총을 꺼내 아무렇지 않게 장전을 하고는 남자를 바라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마구잡이로 당겼다.

 

소음기 덕에 커다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기다란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기는 몸을 보고 홍빈은 택운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철컥철컥, 더 이상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총을 던져버린 택운이 홍빈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린 홍빈의 얼굴을 잠시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택운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 무서웠어? “

“ 나, 내가… “

“ 내가 죽인 거야. “

“ … 어? “

“ 내가 죽인 거라고. 너는 그저 목격자야. “

“ … “

“ 넌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홍빈아. 내가 죽인 거지. “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택운을 보고 결국 홍빈이 눈물을 떨궈냈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준 택운이 일어나 홍빈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 가자, 아가. 우리 집으로. “

 

 

 

***

 

 

 

어떻게 알고 왔냐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택운이 내미는 손을 붙잡은 홍빈은 그대로 그를 따라 집을 나왔다.

 

도착한 곳은 정말로 택운이 살고 있는 커다란 집이었다. 텅 비어있을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저택과 같은 집은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들이 가득했고, 그들은 택운의 수하임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택운이 밥 먹듯 경찰서를 들락날락 하는 덕에 분명 홍빈의 얼굴을 대부분의 조직원이 알고 있을 텐데도 그들은 택운의 뒤에 붙어 따라오는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의아함을 띄우는 것은 홍빈 뿐이었다.

 

장례식장을 연상케 만드는 검은 옷을 차려 입은 남자들은 택운의 발길이 향하는 대로 길을 내주었고, 그 뒤를 따르는 홍빈을 호기심이 비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길도 잠시, 혹여나 택운에게 그를 훔쳐보는 것을 들켜 불똥이 튈까 금세 바닥으로 눈을 내리깔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 절반 이상, 아니 전부였다.

 

커다랗고 내부가 복잡한 집 덕분에 꽤나 시간을 들여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나서야 택운의 방 앞에 도착했다.

 

“ … 엄청 숨겨져 있네요, 당신 방. “

“ 내가 겁이 좀 많아서. “

 

말과는 모순되게 택운의 방 주위에는 누구 하나 지키고 서 있는 사람이라던가 입구에서부터 바글거리던 조직원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지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 홍빈은 다른 것을 붇지 않았다. 택운이 열어주는 대로 방 안에 발을 들인 홍빈은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을 주는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꼭 낯선 공간에 적응하려는 듯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며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홍빈을 가만히 뒤에서 바라보던 택운이 입을 열었다.

 

“ 환영해, 내 공간에 오게 된 걸. “

 

 

 

***

 

 

 

하루 아침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홍빈은 며칠간 택운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제 방을 준비해두었다고 언뜻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홍빈은 굳이 위치를 묻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것보다 누군가가 옆에 있거나 흔적이 남아있는 방에 머무는 편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홍빈은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악몽을 꾸었다.

 

총상을 그대로 지닌 채, 몸이 뚫린 아버지가 자신을 벽으로 몰아넣는 꿈이라던가,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가 바닥을 벅벅 기어오며 자신의 발목을 잡는 꿈이라던가.

 

꿈 속이라고 할지라도 발이 굳어 도망치지 못하는 홍빈을 구해주는 것은 늘 택운이었다.

 

그 날과 같이 총 혹은 칼, 심지어 도끼를 들고 나타나는 택운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홍빈에게서 떼어내 주었고, 꿈의 끝은 항상 그가 내미는 커다란 손을 맞잡는 것이었다. 그 터무니 없는 꿈에 홍빈이 허우적거리며 깨어나면 늘 택운은 귀찮은 기색 없이 그를 안심시켰다.

 

“ 또 아버지가 나왔니? 걱정하지마, 내가 지켜줄 거야. 아무 생각하지마, 홍빈아.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

 

반복되는 위로의 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손을 꽉 잡아주는 행동에 홍빈은 점점 택운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

 

 

 

성실한 홍빈이 무단으로 서에 나오지 않고, 똑같이 홍빈이 사라지자 간간히 들리던 택운의 조직에 대한 소식도 뚝 끊겨버렸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셀 수 없는 연락을 시도한 원식이 결국 몰래 홍빈의 집을 찾아갔고 잠겨있지 않는 현관과 그 안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즉각적으로 서에 연락을 취한 원식은 자신의 팀원들이 오기 전 간략하게 현장을 둘러봤고 엎어져 있는 시신이 홍빈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지럽게 늘어져있는 담배처럼 보이는 것들 과 시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는 작은 잭나이프 하나와 총 한 자루를 보며 원식은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들까지 그려나갔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뒤에 팀원들이 도착했고, 감식반들과 함께 현장 조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리저리 늘어져있는 정황들로 봤을 때 다들 원식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버지가 자신을 잭나이프로 위협하자 당황한 홍빈이 총을 꺼내 들었고,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든 우발적이었든 발포를 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 어떻게 됐어? “

“ 마약이랍니다. 대마의 한 종류래요. “

 

예상했던 대로 어지럽게 늘어져있는 담배와 같은 것들의 마약의 일종이었다. 원식은 자신의 생각이 맞아 들어가는 것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뒤늦게 추가된 정보에 금세 인상을 썼다.

 

“ 총에 지문이 없어? “

“ 예, 홍빈 선배는 물론 그 누구의 것도 남아있질 않아요. 아, 그리고 하나 더. “

“ 뭔데. “

“ 집 안에서 발자국이 나왔어요. 혹시 두 사람께 아닌가 싶었는데 사체의 것은 아니고 홍빈 선배 것이라고 하기엔 사이즈가 좀 크다고 하더라고요. “

 

제 3자의 등장에 원식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안심을 했다.

홍빈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벌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이상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인물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한 발만 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 홍빈의 성격상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여도 한 발 이상을 쏠 리가 없었을 텐데 시신에게는 마치 원한이 있는 누군가에게 당한 것처럼 여러 발의 총상이 남아있었다.

 

한 발만 쐈어도 충분히 당황한 채로 그대로 멈춰 있었을 홍빈이기에 원식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들 바닥에 놓여있는 총 한 자루와 그간 부자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참고하여 홍빈을 유력한 용의자로 두는 분위기였지만 원식은 달랐다.

 

 

 

***

 

 

 

한참 홍빈의 행방을 찾던 원식은 뒤늦게 서야 그가 택운의 보호 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홍빈이 그의 밑에 있는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 … 이거 왜 덮어두셨습니까. “

“ … “

“ 정택운 그 자식한테 돈이라도 받으셨어요? “

 

인상을 쓰는 상사의 행동에 원식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우발적이든 어떻게 된 상황이든 홍빈이 자신의 아버지를 총으로 쐈고, 그걸 경찰보다 먼저 알아챈 택운이 이 일을 빌미로 홍빈을 제 밑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상사는 택운에게 돈을 받고 홍빈의 행방을 알고 있음에도 묵살하고 있는 것이었다.

 

“ 자살로 종결 짓는 게 말이 돼요? 총상이 그렇게 많은데? “

“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납득이 가지 않지만 피해자는 마약까지 한 상태였어. “

“ 반장님!! “

“ 조용히 넘어가면 홍빈이 그 녀석한테 피해가는 것도 없는데 왜 들쑤시려고 하는 거야, 너?? “

 

오히려 큰 소리로 나오는 반장의 말에 원식은 헛웃음을 지으며 더 이상의 대답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며 서를 빠져 나왔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원식은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개인 조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순간부터 머리를 굴린 원식은 이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일을 이해하려면 택운을 만나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에 아주 빠르게 도달했다. 자신과 똑같이 이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상혁에게 이것저것 몰래 개인적인 부탁을 한 원식은 택운이 곧 대기업의 임원 취임식에 혼자 얼굴을 비출 것이라는 정보를 얻어냈다.

 

다행히도 어찌어찌 지인의 힘을 빌려 그 취임식에 잠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최대한 조용히 있으라는 지인의 간곡한 부탁에 원식이 능글맞게 웃으며 알았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깔끔한 정장차림을 하고서 최대한 어색해 보이지 않기 위해 평소 잘 쓰지 않던 안경까지 착용한 원식이 찬찬히 취임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꽤 커다란 연회장을 두 바퀴쯤 돌았을까, 오지 않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찾아 헤매는 얼굴이 안 보이자 미간이 좁혀질 때쯤 원식은 원하던 인물을 발견했다.

 

그것도 두 사람 모두 말이다.

 

임원으로 보이는 인물들과 안 그런 듯 보이지만 꽤 반갑게 인사하는 택운과 그 뒤에 딱 붙어서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홍빈.

 

그들은 처음 보는 홍빈의 등장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간간히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눈치를 보냈지만 택운은 자연스럽게 그 질문을 묵살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따금씩 홍빈의 눈치를 살피며 재미없는 대화를 맞받아치던 택운이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기 직전 자리를 피했다.

 

안색이 좋지 못한 홍빈을 위해 그나마 사람이 적은 곳으로 향하는 택운의 뒤를 원식이 조용히 뒤따라갔다.

 

시끌벅적한 연회장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두 사람에게 다가서자 홍빈은 동그란 눈을 크게 떠보였고, 택운은 반갑지 않은 얼굴에 날카로운 눈을 했다. 대놓고 홍빈을 보호하는 것처럼 그를 바로 제 뒤에 숨긴 택운은 입가에만 미소를 띄우며 원식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김원식 형사님? “

“ 그렇네요. 늘 엄마 찾는 애새끼마냥 홍빈이만 상대하시잖아요. “

“ 그 삭막한 철창 천지에 보고 싶은 얼굴을 따로 있으니까요. “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손에 힘을 주며 악수를 한 두 사람이 잠시의 침묵을 가졌다.

 

한참이나 택운을 노려보던 원식의 눈이 조심스럽게 홍빈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함과 동시에 결국 홍빈의 고개가 떨어졌고 원식의 시선이 다시 택운을 향했다.

 

“ 뭘로 협박한 겁니까? “

“ 제가 어떻게 경찰을 협박하겠어요. “

“ 말은 참 번지르르하게 잘하시네요. “

 

한참 기싸움을 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홍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내 발로 따라왔어. “

“ … 뭐? “

“ 내 발로 들어온 거라고. “

 

단호한 홍빈의 말에 원식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것은 원식뿐 만이 아니었다. 원식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제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한 홍빈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 택운이 이내 눈가에도 미소를 띄웠다.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홍빈의 떨리는 손을 슬며시 잡아준 택운이 그대로 멈춰버린 원식을 지나치며 간결한 말을 남겼다.

 

“ 이제 얼굴 뵙는 일 없을 겁니다, 김원식 형사님. “

 

 

 

***

 

 

 

집으로 돌아온 택운은 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뒤를 돌아 홍빈에게 입을 맞추었다. 충동적인 행동이라 홍빈이 피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저항하지 않는 몸에 택운이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저와 똑같이 눈을 감고 있는 홍빈을 보고 택운이 입꼬리를 조용히 올렸다.

 

“ 아가. “

“ 네? “

“ 왜 안 피해? “

 

택운의 질문에 고민하는 듯 홍빈이 그의 눈을 마주한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곧 우물거리던 입술을 열었다.

 

“ … 싫지 않으니까요. “

 

슬금슬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는 택운이 굳이 표정을 숨기지 않자 홍빈의 귓가와 볼이 옅은 붉은 색을 띠었다. 솔직히 홍빈 자신도 원식에게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갑작스레 입을 맞춰오는 택운의 행동을 밀어낼 수 있음에도 왜 밀어내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원식과 마주한 순간에 자신을 구해준 택운을 모른 척하기 싫었고, 제게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유에서든 자신에게 키스를 해오는 그를 밀어내기 싫었을 뿐이었다.

 

발갛게 물든 귓가를 간지럽게 만지작거린 택운이 다시 한 번 입술을 가까이 했고, 홍빈은 그저 아까와 같이 눈을 감으며 못 이기는 척 입을 벌렸다.

  

 

  

***

 

 

 

며칠 뒤 원식은 어떻게 알아낸 건지 택운이 바꿔준 홍빈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답장을 할까 말까 하루 종일 고민하던 홍빈은 한 번만 얼굴을 비추라는 원식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택운의 집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몰래 바깥에 나가는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원식의 얼굴을 취임식 때보다 어두웠고 무서운 얼굴이었다. 두 사람 다 할 말을 찾지 못해 조용한 카페에서 컵에 물기가 서릴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결국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원식이 먼저였다.

 

“ 홍빈아, 너 지금 그 자식 계획대로 그 집에 있는 거야. “

“ … 뭐? “

“ 너 지금 그 인간 덫에 걸려든 거라고. “

“ 무슨 뜻이야. “

 

한참을 머뭇거리던 원식이 홍빈에게 노트북과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넸다.

 

영문도 모르고 일단 건네 받은 홍빈이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엇인지 눈으로만 묻자 원식이 직접 노트북을 켜고 서류를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슬쩍 눈치를 살피며 서류로 눈을 향한 홍빈이 몇 줄을 읽어나가다가 다시 얼굴을 굳힌 원식을 바라봤다.

 

노트북에서 영상까지 켜서 보여주자 홍빈은 그대로 화면에 시선을 둔 채 멈춰버렸다.

둘 사이엔 정적만이 흘렀다.

직접 틀어준 영상과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늘어진 서류를 몇 번이고 살핀 홍빈이 텅 빈 눈을 했다. 화면에 선명하게 나와 있는 택운의 얼굴을 손 끝으로 문지르던 홍빈이 작게 이야기했다.

" ... 거짓말. "
" 현실이야, 홍빈아.
" ... "
" 제대로 봐, 너가 잘 아는 얼굴이잖아. "

 

낡은 건물로 끌려들어가는 자신의 아버지와 얼마 안 가 똑같은 건물로 들어가는 택운,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르고 빈 손으로 들어갔던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나이프 하나와 종이 봉투. 원식이 충분한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도 홍빈은 이미 모든 것을 이해해버렸고 혼란스러워 했다.

 

“ 너희 아버지가 들고 있는 종이봉투 찾아서 조사했는데 그 안에서 대마 성분이 나왔어. “

“ … “

“ 대마랑 칼 손에 쥐어준 거, 정택운이야. “

 

그 뒤로 이어지는 너무나도 익숙한 복도의 영상.

 

집 앞에서 자신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한참 뒤 마치 기다린 것마냥 문을 열고 제 집으로 들어가는 택운의 모습,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택운의 손에 이끌려 허둥지둥 나오는 자신의 모습까지.

 

할 말을 잃어버린 홍빈이 입술만 몇 번 벙긋거리다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잔혹한 짓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원식은 결심을 굳힌 듯 눈물이 그득한 홍빈을 보고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 널 얻기 위해서 정택운이 저지른 짓이 아주 많아. “

“ … “

“ 그것 때문에 곧 정택운은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

“ … “

“ 얼마 안 걸려, 홍빈아. 1~2주 안에 모든 게 정리되고 우리 팀이 거기를 무너트리려 갈 거라고. “

 

원식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홍빈이 결국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돌아 나가는 홍빈을 보며 원식이 몇 마디를 덧붙였지만 이미 모든 걸 잃어버린 그의 귀에 잔인한 말들이 더 들어갈 리가 없었다.

 

 

 

***

 

 

 

처음으로 제 발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잠시 나갔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고 싶었지만 아이는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불편해 보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이 집에 아이를 들인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두기만 했던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차가운 냉기가 감도는 방 안에 들어온 아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내 뒤를 따라 방에 발을 들이고 침대에 바로 침대에 엎어져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침엔 그 위에 눈물 자욱이 가득할 것 같았지만 모른 척 나와 문을 닫아주었다.

 

 

 

***

 

 

 

택운의 방에 들어선 홍빈은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들어가 침대 위에 올라갈 때까지 고요한 발소리를 유지했다. 눈을 감고 잠들어있는 택운을 깨우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던 홍빈이 조용히 손을 그의 목 위로 올렸다. 감싸기만 하고 힘을 주지 않던 홍빈의 행동에 미동이 없던 택운이 고요함을 깨트렸다.

" 뭐해. "
" ... "


택운의 목소리에도 홍빈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택운이 깨어있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조용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그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눈을 뜬 택운이 제 목 위에 올라와 있는 두 손을 감싸 쥐며 힘을 주자 홍빈이 먼저 손을 뗐다.

" 못하겠어? "
" ... "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한참이나 떨림과 갈등을 동반하는 눈을 바라보던 택운이 베개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런 일을 대비해 둔 것처럼 검은색 총을 꺼내든 택운은 힘없는 홍빈의 손에 그것을 쥐어주었다.

" 이제 쉽지? 한 발이야, 이홍빈. "

자그마한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이마에 직접 총구를 대주기까지 한 택운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눈으로 홍빈을 바라보았다. 방아쇠에 손을 가져다 댄 홍빈이 오히려 그보다 더 공허한 눈을 했다.

잠시간 택운에게 총구를 향하던 홍빈이 손끝에 힘을 주는 듯 싶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던 홍빈의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곧 택운을 향하던 총구가 홍빈의 관자놀이를 향했고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택운이 그의 손목을 낚아채 밀어 눕혔고 곧 고요한 방 안에는 커다란 총소리가 울렸다. 제 밑에 눕혀진 홍빈을 택운은 굉장히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뭐 하는 거야. “

“ 뭘요. “

“ … “

“ 죽일 수 없게 만들었으면 죽을 수라도 있게 해줘야죠. “

 

공허한 홍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힘없는 홍빈을 조심스레 끌어안은 택운이 얼룩진 뺨에 입을 맞췄다.

 

“ 좋아해, 홍빈아. “

“ 비켜요. “

“ 아가. “

“ 더 이상 날 흔들지 말아요. “

 

울먹임이 가득한 목소리에 택운이 고개를 들고 홍빈의 눈을 마주했다. 원망과 혼란스러움이 잔뜩 섞인 눈가를 손으로 쓸어주는데 홍빈이 그 손을 힘없이 거부했다. 그것마저 택운이 손을 잡아채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저지당하자 결국 홍빈이 감정을 쏟아냈다.

 

“ 왜 잘해줘요. 나 지금 당신 원망하고 있잖아요. “

“ 좋아해. “

“ 나 당신 밉다고요, 정택운씨. “

“ 사랑해, 홍빈아. “

 

달콤하게 속삭이는 애정의 말에 홍빈이 힘없이 택운의 어깨를 치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택운과 같은 감정의 싹을 틔워버린 홍빈이 외면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목놓아 울음을 토해내며 끌어안은 몸을 더 꽉 붙잡았다.

 

 

 

***

 

 

 

홍빈에게 모든 것을 들키고 나자 택운은 서슴없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일들을 직접 하기 시작했고, 얼굴을 비추면 위험한 일에도 마치 잡아가라는 것처럼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던 택운의 꼬리를 물기가 쉬워지자 원식은 의구심을 품었지만 눈 앞에 놓여진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다. 꼭 일부러 경찰에게 장소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커다란 연회장에서 마약거래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흘린 택운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붙이지 않고 혼자 행동을 했다.

 

다른 팀원들이 현장을 살피는 동안 원식은 택운만을 쫓았고 결국 홀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그와 대치하게 되었다. 현장 검거를 위해 위협용으로 원식이 조용히 총을 겨누며 양 손을 들 것을 지시하자 택운이 고분고분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허리에 채워둔 수갑을 들어 원식이 택운에게 다가서는 순간 두 사람의 긴장감을 깨고 어디서부터 따라왔는지 홍빈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나타났다.

 

" 총 내려놔. "

 

제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홍빈의 모습에 원식의 눈이 흔들렸다. 홍빈이 등장하자마자 택운은 마치 이 상황을 기다렸던 것처럼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뒤를 돌았다. 홍빈에게 시선을 두던 원식이 그제야 총을 고쳐 잡았고 눈을 택운에게로 향했다.

 

" 정택운 멈춰 서. "

" 김원식 총 내려놔. "

" 이홍빈!!! "

" 총 내려놓으라고. "

 

물기서린 눈으로 힘주어 말하며 제 정면으로 와 택운을 가리고 서는 홍빈의 행동에 결국 원식은 이를 꽉 깨물고서 둘을 향했던 총구를 바닥으로 떨궜다. 자신에게 끝까지 눈을 떼지 않으면서 뒷걸음질로 가만가만 택운을 따라가는 홍빈을 보며 원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떨궈낼 것 같은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

 

 

 

차 안으로 돌아와 눈물을 매달고 있는 홍빈에게 택운은 아주 천천히 입을 맞췄다.

 

“ 걱정 하지마, 아가. 난 너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죽지 않을 거야. “

“ … “

“ 나는 이홍빈 네 손에 죽을 거야. “

 

그 날 이후로 매일 같이 말을 듣고서 창 밖을 바라보며 거칠게 제 눈가를 문지르는 홍빈을 보고 택운이 조용히 엑셀을 밟았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홍빈은 자신에게 죽겠다는 택운을 몇 번이나 해치기 위해 총을 겨누기도 했고, 목을 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번번히 끝을 맺지 못하고 저항하지 않는 택운을 두고 돌아설 뿐이었다.

 

그러면 항상 택운이 하는 말은 같았다.

 

“ 언제든지 말해, 아가. 난 너한테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

 

독이 오르기는커녕 그럴 때마다 항상 홍빈의 마음은 약해져만 갔다.

인형과 같이 웃음도 심지어 작은 미소조차 보이지 않는 홍빈임에도 택운은 한결같이 그를 대했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늘 말을 걸어왔고, 조심스레 손을 잡았고 하루의 끝에는 항상 입을 맞췄다.

홍빈이 반응을 할 때는 택운에게 입맞춤을 받을 때 뿐이었다.

 

밀어내지도 않고 눈만 잠깐 감았다 뜰 뿐이었지만 택운은 그마저도 감사하게 여겼다.

 

갈수록 점점 제게 살의를 겨누는 횟수가 적어지자 택운은 저를 피하는 홍빈을 굳이 제 무릎 위에 앉혀두고 시선을 마주했다. 여전히 비어있는 홍빈의 눈가를 매만지며 몇 번이나 입을 맞추던 택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못하겠니, 아가? “

 

홍빈의 고개가 한참 만에 아주 느리게 끄덕여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택운은 이런 홍빈의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 아가. “

“ … 네. “

“ 그럼 우리 같이 죽을까. “

 

여태껏 바닥을 향하던 홍빈의 눈이 택운에게 똑바로 초점이 맞춰졌다.

 

“ 난 이제 너 없이 못 살아. “

“ … “

“ 네가 죽일 수 없으면 내가 날 죽일게. 그런데 무서우니까 같이 가줘. “

“ … “

“ 나 겁 많잖아. “

 

은은한 미소를 띠우는 택운의 얼굴에 홍빈이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그를 끌어안았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분명했다.

 

 

 

***

 

 

 

아래층에서 간간히 들리는 총소리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도 택운은 홍빈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지금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모두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을 하고서 택운은 끊임없이 홍빈의 머리와 얼굴을 매만지며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구는 것은 택운 뿐만이 아니었다.

 

홍빈 또한 가만히 택운의 품에서 그와 똑같이 자신을 진득하고도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날카로운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아내고 있었다.

 

 

뒤통수에 닿는 서늘한 느낌에 홍빈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걸 본 택운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물었다.

 

“ 두렵니? “

“ … “

 

홍빈이 조용히 고개를 내젓자 택운이 반듯한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긴장을 풀어내려는 듯 숨을 길게 내뱉는 홍빈의 입술에도 가볍게 키스한 택운이 이마를 맞대고 눈을 감았다.

 

“ 잠깐이야, 아가. “

“ … 네. “

“ 한 순간에 끝날 거야. 걱정하지마, 홍빈아. “

 

조용히 불린 자신의 이름에 홍빈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셔츠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겸허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홍빈의 모습에 택운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이 맞이 하기로 한 결론이었다.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는 일이었고, 바꿀 생각도 없는 일이었다.

 

“ 아래에서 만나자, 아가. “

 

홍빈이 택운과 같은 미소를 짓는 순간, 커다란 방 안에 시끄러운 총성이 단 한 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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