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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다

AR

@loveattack10051

길들여지고 있다.

 

 

택운은 늘 같은 시간에 깨어난다. 아침 7시. 기계처럼 몸을 일으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새카만 정장을 입은 원식이 들어와 커피를 건넨다. 고마워. 택운은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으론 노트북을 켠다. 확인해야 할 문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대부분 쓸데없는 것이기에 길게 읽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원식이 정리해 가져올 것을 안다. 초대장, 초대장, 초대장…. 중요 인사가 보낸 것만 따로 확인하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쌓여있을 것들이다. 확인하고 나자 또 메일 한 통이 전송되었다. 눈에 띄는 이름이다. K. 제가 늘 이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몇 없었다. 택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메일을 확인했다. 제가 K에게 부탁한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천천히 메일을 확인한 택운이 회신을 한 후 문 앞에 서 있던 원식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오래 기다렸지? 원식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택운의 손에 있던 컵을 받아 들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식의 딱딱한 말투에 택운이 입술을 삐 죽내밀었다. 둘만 있을 땐 편하게 하라고 했거늘 말을 듣지 않는다. 택운은 가운을 벗으며 대꾸한다. 안 먹을래. 원식이 한숨을 푹 내쉰다. 보아하니 커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오늘 일정도 빽빽한데 빈속에 움직일 순 없었다. 형. 그제야 택운이 웃으며 돌아본다. 우리 박 셰프한테라도 가볼까. 그러곤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원식은 가운을 주워들며 회신을 돌렸다. 아침 미팅은 A 레스토랑으로. 미팅 상대가 한식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어린아이처럼 굴지만 않으면 완벽한 사람인데 말이야. 원식은 택운이 입을 옷을 준비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보스는 어리광이 심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보스 자리까지 올라왔나 싶을 정도였다. 첫 만남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부하들도 심심하면 장난을 칠 정도니 말 다 했다. 자기 딴에는 나름의 침묵과 무표정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에만 가면 탁 풀어지는 얼굴은 숨길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이홍빈이라던가. 홍빈만 보면 표정이 탁 풀리면서 싱글벙글 웃기 바쁘다. 오죽하면 보스가 기분이 안 좋을 땐 이홍빈을 데려오라는 말이 돌겠느냔 말이다. 원식은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택운의 기분이 풀린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종일 죽상을 하여 미팅을 모조리 망치는 것보다는 살짝 웃는 편이 잘 어울렸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차에 오른 택운이 원식의 어깨에 머리를 푹 기댄다. 영감탱이 말 겁나 많아. 확실히 상대가 말이 많긴 했다. 말수가 적은 택운에 비해 주름 자국이 깊게 팬 단단한 얼굴로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에 기가 눌릴 정도였다. 어깨에 기댄 머리를 손으로 단단히 받친 후 미팅 때 주고받았던 안건들을 펼쳐보는데 택운이 불쑥 끼어든다. 아까 아침에 재환이가 저번에 부탁한 거 보냈다던데 확인했어? 비서가 앞 좌석에서 노란 봉투를 건넨다. “아뇨.” 제법 무겁다. 우리 조직에 이렇게 피라미들이 많았나 싶어 인상을 쓰자 택운이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늙는다. 원식은 애써 표정을 풀고는 명단을 확인했다.

“네가 처리해줘야 할 사람이 있어.”

택운이 무심한 얼굴로 핸드폰을 켠다. 의외로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는 그가 선택한 건 아기자기한 쿠키들이 열심히 달리다가 추락하는 게임이다. 차안 가득 게임 소리가 뿅뿅뿅 울린다. 승부욕이 강한 그는 매번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다. 원식은 천천히 서류를 넘기며 이름과 얼굴을 확인했다. 아는 얼굴도 있었고,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대부분 이름과 얼굴이 일치하지 않았다. 가짜 신분을 달고 들어온 것이다. 빠르게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던 원식이 한 곳에서 뚝 멈췄다. 이름 불명, 나이 불명, 가족 확인 불가, 출신 확인 불가. 어찌나 꼭꼭 숨겼는지 본명조차 알 길이 없다. 허나 얼굴마저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원식은 종이 위에 인쇄된 잘생긴 얼굴을 보며 입안을 꽉 깨물었다. 택운이 부탁한 인물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저를 더 화나게 했고, 할 말을 잃게 했다.

 

 

 

 

낮과 밤이 있듯이 태양과 달도 있었고, 빛과 어둠도 있었으며 희망과 절망도 함께 했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뒤에 가난과 혐오를 뒤집어쓴 이들도 존재했다. 그 안에서 택운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낮에는 보이지 않는 달과 같았고, 밤에는 숨어버리는 해와 같았다. 부하들 앞에선 세상 밝은 줄 모르고 빛을 냈고, 혼자 있을 땐 곧잘 어둠에 삼켜지곤 했다. 누구는 그의 손에서 희망을 맛봤고, 누군가는 그에게 절망을 맛보았다. 부를 가졌지만, 명예를 가지진 못했다. 누군가는 그를 혐오했고, 누군가는 그를 음해했다. 택운이 가진 자리는 그런 것들을 모두 견디고 견뎌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결코 명예롭지 못하고 자랑할 수도 없으며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원식은 그가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기에 상관없지 않으냐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건 원식이 빛을 보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정택운과 함께한 지 십 년이 다 되어갔다. 일찍 가족과 떨어져 살던 원식에게 손을 내민 건 택운이었다. 후에 왜 그랬냐고 물으니 내가 선택한 내 사람이 필요해서. 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극히 그다운 발상이었다. 그가 사는 방식에 맞춰 살았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테이블매너를 배우니 그 후부턴 쉬웠다. 택운은 깐깐한 사람이 아니었고, 저보다 겨우 세 살 많았다. 어릴 땐 그가 엄청 큰 형이었는데 다 크고 보니 저보다 어리게 보일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걸 사랑스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귀엽다고 했다. 그건 택운이 보스의 아들이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일인실에 누워 산소호흡기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보스의 아들. 저보다 스무 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택운은 어릴 때부터 보아온 보스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에겐 조카쯤 되는 아이였다. 그러니 키가 아무리 커도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다. 정식으로 보스의 자리를 물려받았음에도 그랬다. 그제야 원식은 제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스의 오른팔쯤 되는 위치였다. 애인이라기엔 멀고, 친구라기엔 격식 있고, 보디가드쯤 되는 위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김원식이 정택운에게 가진 감정들은 때론 존경이었고, 때론 사랑이었으며 때때론 정복욕을 동반하기도 했다. 피곤하고 짜증 나고 그럼에도 멀어질 수 없는 존재였으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다. 누군가 이유를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택운이 형은 좋은 사람이야. 내가 스파이란 걸 알면서도 살려뒀어. 기회를 줬지.”

원식의 세계에는 택운이 전부였다. 열여섯이 되던 해에 그를 만났고, 함께 살았다. 모든 것이 그에게 맞춰 길들여졌다. 원식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를 거둬주고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믿고 등을 맡겨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길들여지고 있었다. 택운이 선택했고, 필요에 의해 주어온 개처럼 길들여지고 있었다. 원식은 그래도 괜찮았다. 사랑했으니까.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유는 분명했다. 누군가는 핑계라 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정택운을 해하려 하는 이들을 살려둘 수 없었다. 조직 내에 스파이가 있단 정보를 입수했다. 택운은 우리가 깨끗한 조직도 아닌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떠냐며 원식의 등을 툭 쳤지만, 택운이 독을 삼킨 이후론 그럴 수 없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택운의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 마른 뺨. 기다란 손가락이 원식의 뺨을 툭 건드렸다. ‘잘 잤어?’ 희미하게 웃는 얼굴에 원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약한 사람이었다. 어릴 땐 축구도 하고 운동도 곧잘 했다고 들었는데 이젠 조금만 움직여도 픽 쓰러지곤 했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잘 먹고 푹 쉬어야 한다고. 지금 택운에게 해줄 수 있는 처치는 그게 다였다. 이후엔 약을 챙겨 먹기도 했는데 그거론 부족했는지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다. 택운은 차에서 늘 잠을 잤다. 짧은 거리에도 잘 잠들어 원식은 부러 몇 바퀴를 더 돌아가게 했다. 그런 택운이 독을 마셨으니 난리가 났다. 차를 내온 웨이터는 물론이고 식당의 청소부까지 전부 물갈이를 해야 했다.

“그때 네가 그랬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냐고, 주방에 있던 녀석들만 치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원식의 말에 남자가 그걸 기억하냐는 듯 커다란 눈을 흘겼다.

“그때도 너야?”

홍빈을 겨눈 총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하길 바랐다.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고 마음 같아선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 아니라고 뭔가 잘못된 거라고 해주길 바랐다. 그때 일만 아니라면 원식은 홍빈이 스파이든 뭐든 용서해줄 의향이 있었다. 놓아줄 수 있었단 말이다.

“…그래. 내가 그랬어.”

“이홍빈.”

“잘 안 죽더라.”

탕. 총알이 홍빈의 어깨를 스쳤다. 쇠 된 신음이 터졌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씨발, 보스가…정택운이 널 얼마나 아꼈는데….”

횟수로 따지면 6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지냈다. 웃고 떠들고 가끔은 갈비뼈가 나갈 정도로 싸우기도 했다. 이홍빈은 김원식에겐 소중한 친구였고, 정택운에겐 소중한 동생이었다. 유독 이뻐한 티가 났다. 다들 사랑받으니 좋겠다고 했고 홍빈은 다른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기뻐하는 게 눈에 보였다. 택운에게 쉽게 장난쳤고, 쉽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형, 제가 진짜 존경하고 사랑하는 거 알죠?’ 스스럼없이 그런 말을 했다. 대부분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 말이었으나 그런 날이면 택운은 기쁜 티를 벗지 못했다. 그렇게 좋냐고 물으니 눈을 곱게 접으며 목이 빠져라 고개를 흔든다. 그게 질투가 나 저도 형 많이 사랑해요. 이홍빈보다 더. 하고 말하려다 입을 삐죽 집어넣는다. 불쑥 튀어나온 제 본심이 택운을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

“그게…참 싫더라고….”

“닥쳐.”

“너희 같은 양아치 새끼들이, 서로 아끼고 웃고 떠들고 위선 떠는 모습이 역겨웠어.”

젠장. 총을 들고 있지 않은 반대쪽 주먹이 홍빈의 턱을 때렸다. 닥쳐, 제발. 화를 내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반쯤은 울고 있었고, 반은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택운이 이홍빈을 아꼈다. 자기를 죽이려던 놈이었는데도 살려뒀다. 기회를 줬다. 그 사실만으로 화가 났다. 미련한 정택운 때문인지 배신자인 이홍빈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났고, 슬펐고, 이대로 녀석을 살려야 할지 죽여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절망의 연속이었다.

“난 못 죽이겠어?”

“…….”

“지금껏 무기 팔고 도박하고 약 팔고 사람도 죽이던 녀석이 난 못 죽이겠나 봐.”

홍빈의 커다란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무기 밀수도 하고, 도박도 했고 약도 팔았다. 거치적거리는 이가 있다면 언제든 죽였고, 택운을 방해하는 녀석들은 모조리 살아남지 못했다. 걔 중에는 홍빈의 손에 죽은 이들도 있었다. 원식의 턱이 덜덜 떨렸다. 입술을 꽉 깨물곤 몸을 일으켰다.

“나…택운이 형 사랑해.”

“…알고 있어.”

“…네가 살아있다면 분명…정택운이 위험해지겠지.”

생각한다. 이대로 이홍빈을 살려 보낸다면 정택운이 위험해질 것이다. 정택운이 이홍빈에게 저를 보낸 까닭은 제가 이홍빈을 살려 보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였으니까. 아꼈으니까. 누구보다 친했으니까. 이재환도 아닌 저를 보낸 건 이홍빈을 살려 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정택운은 그런 사람이다. 이홍빈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제 손을 통해. 스스로가 위험에 빠지더라도. 허나 김원식은 달랐다. 만약 이 길의 끝이 정택운을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면, 그 위험이 결국 죽음까지 이른다면. 생각을 마친 원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너…차학연이 보냈냐?”

“…김원식 말이 많다.”

“……그래….”

더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눈물 자국을 소매로 닦아낸 원식이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며 자리를 떠났다. 죽였다. 빗맞을 거리도 아니었고, 살아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이홍빈을 제 손으로 죽였다. 절친한 친구였다. 하나뿐인 친구였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였다. 그의 손이 택운의 등을 찌르는 줄도 모르고 그랬다. 차에 혼자 올라타자 홍빈의 재킷이 남아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핸들을 붙잡은 원식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은 원식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홍빈과 택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 그리고 애정이 한데 뭉쳐 원식을 짓눌렀다.

 

 

사람을 주웠다. 비 오는 날엔 돈도 줍는 거 아니랬는데 사람을 주웠다. 저보다 조그마한 애가 길목에 쓰러져있는데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을 위로하며 아이를 부축했다. 어깨에 팔을 걸치고 서자 우산을 들 손이 없어 우산은 버렸다. 지나가는 고양이가 비를 피하는 데 썼길 바란다.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자 비가 아니라 땀 때문에 옷이 흠뻑 젖었다. 나름 운동도 하고 체력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난리가 난 집안을 수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비서에게 맡겼다. 오다가 주웠어. 택운의 말에 비서는 입만 떡 벌리곤 말도 하지 못했다. 기가 찰 것이다. 집안에 하나 있는 도련님이 비를 맞고 오질 않나 사람을 주워오질 않나. 나는 알아서 씻을 테니까 이 녀석 옷 갈아입히고 돌봐줘. 그리 말하곤 방으로 들어오자 물에 푹 젖은 옷에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겨우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그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차학연과 싸웠다. 경찰이 되고 싶다는 녀석에게 농담으로 그럼 나 잡아가는 거야? 하고 말했는데 무서운 얼굴로 잡혀갈 짓 할 거야? 하고 되묻기에 어깨만 으쓱였다. 어차피 아버지가 자리를 물려주면 싫어도 가업을 이어야 했다. 학연이 경찰이 되든 다른 직업을 가지던 택운은 선택할 것이 없다는 소리다. 이후로도 계속 가업을 잇지 말라는 둥 다른 일을 하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그만하라고 했더니 녀석도 입을 꾹 다물었다.

“학연아, 나한텐 선택권이 없어…”

“노력은 해봤어?”

말을 하고서도 실수했다는 걸 알았는지 학연이 고개를 푹 숙인다. 택운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가방을 들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늘 이런 식으로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면 학연이 먼저 다가와 평범하게 말을 걸 것이다. 나는 거기에 응해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택운이 앓는 소리를 냈다. 미래, 꿈, 희망 이런 것들과 자신의 위치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학연이 상상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화를 내주는 게 고마웠고 한편으론 짜증 났다. 나를 걱정해주는 것을 아는데 충고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학연이 미웠다. 나를 여기서 데리고 도망칠 것도 아니면서. 그런 힘도 배짱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눈앞에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김원식? 네. 나이는 열여섯이고, 나보다 세 살 어리네. 네…. 학교는? 중간에 그만뒀어요. 왜? ……. 대답 안 해도 상관없어, 다시 다니고 싶어? 아니요. 그래.

동그란 이마에 어울리는 축 처진 눈매. 날렵한 콧대에 단단한 턱과 입매가 꼭 잘생긴 도베르만을 떠올리게 했다. 오래전부터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싶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키우던 개마저 누나 집으로 보내야 했기에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다른 걸 키우기로 했다. 개보다 충성심은 낮지만 잘 키우면 열 짐승 부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똑똑하고 잘생겼다. 옆에 데리고 다녀야지. 택운은 그렇게 원식과 함께 생활했다. 집에 남는 방 많으니까 하나 써. 그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대부분 같은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학연이 대입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택운은 대부분 집에서 가업을 잇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 원식도 함께였다. 고등교육과 함께 온갖 교양과 호신술을 배웠다. 다치기도 했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노력파였던 원식은 호신술은 택운보다 능히 해냈다. 택운은 어차피 네가 지켜주면 되지 내가 배울 필요가 있느냐며 투덜거렸다. 제가 언제나 옆에 있을 순 없잖아요. 그리 말하는 원식을 보며 택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웃었다.

“재환이라면 그렇게 말 안 했을 텐데.”

말에 크게 다른 의미를 두고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말에 의미를 담을 순 없었고, 원식의 말에 택운은 제 생각을 툭 내뱉은 것뿐이다. 물론 원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건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택운은 그것을 풀어주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김원식은 투견이다. 질투도 증오도 원망도 힘이 될 것이다. 길들여지면 질수록 택운의 입에서 다른 이름이 나오는 걸 견딜 수 없겠지. 택운은 그가 어서 길들여지기를, 저를 사랑하기를… 그래서 그 어떤 시련도 훌쩍 뛰어넘길 바랐다.

 

 

 

 

“보스, 보스는 알고 있었죠?”

재환과 마주 보며 앉아있던 택운이 원식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셔츠는 피범벅이었고, 얼굴은 엉망진창에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걸 재환이 말리려다 택운에게 저지됐다. 나가 있어. 택운의 말에 재환이 고개를 숙이곤 방을 나갔다. 원식을 지나치는 내내 재환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허튼짓하면 알아서 해. 그런 눈빛이었거늘 원식이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문이 닫히고도 구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택운은 수건을 가져와 원식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 어떠한 물음도 없었다. 힘들진 않았냐, 어떻게 되었느냐 택운은 묻지 않았다. 옷 갈아입자. 택운이 넥타이를 풀어주며 말했다. 셔츠 단추를 푸는 손길에 원식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택운의 손을 잡아채자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심장이 마구 요동쳤고,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차라리 이대로 심장이 멎어 죽었으면 했다. 너무 괴로웠고, 힘들었다. 당신과 함께 죽고 싶어. 이러기 위해서 친구를 죽인 게 아닌데. 당신과 죽기 위해서 친구를 희생한 것이 아닌데. 당신이 너무 소중해서,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서. 원식의 침묵에 택운은 기꺼이 응해줬다. 손을 붙잡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얼굴을 마주 봤다. 기다란 팔이 목을 끌어안았다. 가슴이 맞닿고, 머리를 짓눌러 어깨에 묻게 했다. 자스민 향이 코를 찔렀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가느다란 손가락에 다정이 뚝뚝 묻어났다. 원식은 손을 뻗어 택운의 몸을 끌어안았다. 제 심장 박동이 택운에게 들리길 바라고, 또 바라며.

 

 

 

 

2

난 저 새끼 싫어. 재환이 담배를 빽빽 피우며 말했다. 원식은 옷에 밴다며 그만 피라고 했지만 재환은 꿋꿋이 담배를 피워댔다. 여기가 아니면 택운이 보이지도 않아서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3m쯤 떨어진 곳에 택운이 활짝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재환이 가리킨 이는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언뜻 보면 어려 보이는 얼굴인데 나이는 택운과 같단다. 소꿉친구라나 뭐라나, 십년지기라고 했던가? 재환이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올해로 20년. 원식이 혀를 내둘렀다. 근데 형님은 왜 싫어합니까? 뭣 모를 때 그리 물었다. 재환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저놈 짭새야. 경찰이야 우리랑 가장 자주 부딪치는 얼굴이라 이토록 싫어할 줄 몰랐던 원식이 영혼 없는 대답을 하자 재환이 덧붙였다. 저 새끼 땜에 내가 빵을 다녀왔다고.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이재환은 정택운을 아꼈다. 정택운이 보스 자리를 받은 게 언젠데 아직도 입에 붙었단 이유로 형님형님 하고 불렀다. 택운은 그게 귀엽단 이유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실질적인 조직의 이인자였고, 택운이 아끼는 부하 중 하나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올리고 눈썹에 스크래치까지 하니 정말 조폭이 따로 없었다. 그게 멋있다고 원식도 따라 눈썹에 스크래치를 냈다. 내친김에 온몸에 문신을 새겼다. 잘 어울려 다녔다. 재환은 재밌는 사람이었고, 놀 줄 알았고, 장난도 잘 쳤으며 부하가 제게 걸어온 농담도 곧잘 받아줬다. 또한 무서운 사람이었다. 택운이 앞에서 돈과 인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하고 계약을 하면 재환이 뒤에서 모든 일을 다 했다. 중간에 끼어든 피라미들을 잡는 것도 재환의 일이었다. 집안 대대로 정씨 집안과 일을 했다고 했다. 언제든 역전될 수 있고, 반역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잡는 것 역시 재환의 몫이었다. 그래서 늘 사람을 죽이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선 냉정하고 잔인했다.

“형님 시계에 금 갔는데요.”

필터를 잘근잘근 씹던 재환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봤다. 아~ 비싼 건데. 인상을 쓰며 시계를 푼다. 그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원식에게 말했다. 이게 왜 깨졌는지 아냐? 알 리가 없는 원식이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강사장 마빡을 딱! 때렸는데 그때 금이 간 거야~ 수리 맡겨야지 했는데 누가 내 뒤통수를 딱 때리더라고. 몇 주 전 재환이 이마에 피를 잔뜩 흘리고 돌아온 날이 있었다.

“그때 패싸움 나서 경찰도 오고, 우리 애들 몇 명 잡혀가고 그거 빼낸다고~”

그러다 잊었지. 재환은 고맙다며 원식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마침 택운이 대화를 마쳤는지 둘에게 손짓했다. 아직 맞은편에 차학연이 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둘은 정말 택운이 부른 것인지 단순한 손부채질을 착각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재환아, 원식아 일루와.”

개미만 한 목소리가 겨우 둘에게 닿았을 때 먼저 일어선 것은 재환이었다. 저벅저벅 택운에게 가는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분명 저와 비슷한 신장인데도 이럴 땐 한없이 커 보이곤 했다. 택운은 맞은편 학연을 소개하며 말했다. 재환이랑은 저번에 인사했고 원식이랑은 처음인가? 학연은 사람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학연 검사라고 합니다.”

원식은 순진하게 건네오는 손을 잡고 인사했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이네. 그러나 재환은 제 앞에 내민 손을 보고도 한참이나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학연을 노려봤다. 재환아? 택운이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손을 붙잡았다. 악수라고 하기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이 자리에 있는 이중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살벌한 기류가 흘렀다.

“이재환 실장이라고 합니다. 또 뵙네요.”

“택운이가 좋은 실장을 뒀네.”

학연은 애초에 우리 둘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정택운에게 향해있었다.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는 동안 둘의 사이는 많이 멀어져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옆자리,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항상 붙어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둘의 길은 완전히 갈라졌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보고 살았다. 그러다 한번 크게 싸웠다. 택운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린 직후였다. 얼른 집으로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벗어나려는 택운을 학연이 붙잡았다. 지금 가면? 학연의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택운이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지금 가면 나 다시 볼 수 있어? 나랑 계속 친구 할 수 있어? 택운아. 그의 목소리에 택운이 손을 뿌리쳤다. 넌 늘 말로만 그러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나는 지금껏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까지 집안의 도움을 받았어. 그런 내가 싫다고 도망치는 게 맞는 거야? 학연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택운은 그의 까만 정수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이후론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다. 영영 헤어지는 줄 알았지. 설마 학연이 저를 잡으러 오는 날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학연은 그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듯 택운에게 말했다. 다른 길을 찾아주러 왔어. 일단 죗값을 치르자. 택운이 웃으며 받아쳤다. 엿 처먹어.

“차 검사님도 많이 컸네요. 우리 애들 잡아간 게 도움이 됐나 봐?”

무거운 침묵이 원식을 짓눌렀다. 기에 질린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원식은 무섭게 노려보는 두 사람을 보다가 택운과 눈이 마주쳤다. 곤란한 건 택운도 마찬가지였다. 절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동생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학연이었다. 그는 자연스레 시선을 택운에게 돌리며 말했다.

“이실장 빼내는 거 적당히 해 택운아, 잘못하다가 꼬리 잡힌다.”

그렇게 쏙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학연을 보며 재환이 뒤통수에 대고 욕을 쏘아붙였다. 드물게 굳은 얼굴의 택운이 신경 쓰여 원식은 재환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보스. 부르자 돌아보는 얼굴 역시 굳어있다. 금세 풀린 눈으로 왜? 하고 되물었으나 원식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원식아 차 대기시켜라.”

택운을 바라보던 원식이 재환의 말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여전히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한풀 꺾인 목소리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둘이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무슨 대화를 했는지 원식은 영영 알 수 없었다.

 

 

 

3

모르는 게 좋은 편인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이의 잠꼬대 같은 것. 그가 꿈에서 찾는 이름 같은 것들.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여 따져 물을 수도 없는 것들. 한상혁과 보고 싶다는 문장에 원식은 어깨를 들썩이며 택운을 깨울까 잠깐 고민도 해봤지만 그만뒀다.

한상혁? 보스 동생이잖아. 홍빈이 별걸 다 물어본다는 얼굴로 말했다. 친부께서 데려온 양자였다더라. 택운이 형 대신 가업을 잇게 하려고 했는데 반대가 심했던 모양이야. 홍빈이 샌드위치를 씹어먹으며 말했다. 특히 이실장 쪽이랑 충돌이 있었나 봐. 지금 이실장님 말고 그전에. 물티슈로 입과 손을 닦은 홍빈이 자리를 벗어났다. 원식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쫓아오자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운전석에 올라탄 홍빈이 빨리 타라며 고갯짓을 했다.

“그때가 택운이 형 열여섯 살 때였나. 들어온 애는 열 살 정도였는데 둘이 엄청 잘 붙어 다녔다더라. 택운이 형이 친동생처럼 돌봐줬다고 했어. 그러다 택운이 형이 18살 때쯤 걔를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데. 택운이 형이 엄청 화를 냈는데 어쩌겠어 이미 간 애를. 택운이 형도 그땐 어렸고.”

그런 것치고는 단 한 번도 정택운은 한상혁의 존재를 제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사진조차 본 적이 없었단 말이다.

“근데 죽었어. 4년 전쯤에. 택운이 형이 정식으로 보스 자리에 오른 날 있잖아. 축하해주려고 온다고 했는데 공항에서 괴한을 만났데.”

마침 차가 신호에 걸렸다. 홍빈이 맞춰둔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택운이 형 우리 앞에서 약한 모습 절대 안 보이려고 하잖아. 사기 떨어진다고. 한상혁 이야기 안 꺼내는 것도 뻔하고.”

홍빈이 드물게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괴한일까? 하필이면 그날?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

원식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한상혁의 존재를 얼마 전에 알아차렸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이의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엔 원식이 가진 정보가 부족했다. 홍빈이 어떻게 한상혁이란 존재를 아는지가 더 궁금했다.

“애초에 택운이 형은 자기 동생을 보호하려고 말을 아꼈어. 가장 가깝게 지내는 너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단 말이야. 사진 한 장이라도 있으면 위험할까 봐 사진도 모조리 태웠어. 근데 누가 어떻게 한상혁의 존재를 알아차렸겠냐 이 말이야…아…김원식 난 네가 걱정돼 죽겠다.”

“뭐가?”

“택운이 형 너무 좋아하지 마.”

원식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말 끝에 결론이 저것이라니. 대체 한상혁이 죽은 것과 제가 정택운을 좋아하는 게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원식은 시트에 몸을 푹 기댄 채 물었다.

“그럼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차는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냥 형님들이랑 술 먹다 보니 온갖 이야길 다 듣게 되더라.”

원식은 홍빈의 잘생긴 옆모습을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고갤 돌렸다. 모진 말을 쏘아주려다 삼킨 원식이 안경을 벗고는 말했다. 도착하면 깨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홍빈의 집은 불에 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서 한 장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온 원식은 노트북을 켜둔 채 잠든 택운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두꺼운 담요를 들고 와 덮어주자 투정이 따라붙는다.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노트북을 덮으려다 멈칫 힘을 뺀다. 화면 가득 들어찬 이홍빈의 프로필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가 본 것과는 다른 문건이다. 본명, 나이, 주소, 가족관계까지 전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대학교 수석으로 입학. 차학연과는 선후배 사이……’ 한참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도중 한구석에 이재환의 메시지가 떴다. ‘처리했어.’ 처리했다니 무엇을? 원식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택운이 제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건 저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절친한 친구의 가족을 죽이게 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을 테니까. 혹은 친구의 부고를 전해주려는 저를 말리고 싶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진정하려고 해봐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얀 손이 노트북을 닫았다. 고개를 돌리자 택운이 맑은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식아.”

“……네.”

“안아줄까?”

택운의 팔이 원식의 목을 끌어안고 당겼다. 얼굴에 부드러운 담요가 닿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자 요동치던 심장이 점차 제 속도를 찾아갔다.

“옳지, 착하지….”

택운이 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하다. 우리 원식이 착하다.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어린아이 달래듯 낮은 톤의 목소리로 천천히 속삭인다.

길들여지고 있다. 천천히, 부드럽고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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