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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pre allegramente

딩이

@vello303_406

sempre allegramente (항상 즐겁게)

..젠장

왜지?

 

 

“K-4구역입니다. 여기에 없습니다. 이미 다 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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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사실이 아닌 fiction이며, 배경을 제외한 등장하는 모든 지명과 이름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중간에 이탈리아어가 등장합니다. 해석은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

 

*총격전, 유혈 등 트리거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였으며, 유혈에 대한 직접적이고 자세한 묘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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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싸움이었다.

마피아조직 Il velo néro(일베로네이로, 검은 베일)은 지금, 이탈리아 특히 시칠리아섬에서 그 어떤 세력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처음에 불씨를 껐어야 했다.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커질 줄은.

 

 

처음엔 소규모 조직, 아니 집단이었다. 이탈리아를 잡고 있던 3대 마피아 조직에 비하면 그 인원도 콩알 만한 숫자였다. 워낙에 이탈리아는 경제, 정치 심지어 언론까지 마피아가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마피아들이 벌어들이는 수입도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크게 손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정부기관에까지 손을 뻗쳐 놓은 것도 한 몫했다.

 

그들은 약하게는 자신들에 대해 부정적인 언론인, 정치인을 암살하거나 협박하는 일, 크게는 마약과 무기밀매, 가치가 높은 물건들을 절도하거나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밀출입 알선을 해주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총격전과 살인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그 3대 마피아 조직들은 서로 경쟁이 매우 심하기도 했고, 그들이 벌이는 일의 스케일이 꽤나 커서 정부가 그것들을 통제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해버렸기 때문에 작은 도시에서 천천히 커가는 작은 소규모 집단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Il velo néro는 시칠리아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남해안도시 카마리니아에서 시작한 조직이었다. 당시에 카마리니아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외부와의 왕래가 거의 없는 숨겨지다시피한 도시였다. 그러나 곧 항구가 들어서고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마피아들이 입맛을 다시기 딱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 이 틈을 놓칠 리 없었다. 한자리 노려보려고 기회를 찾고 있던 최대 마피아 조직인 fanatismo(파나티스모, 환상주의)의 Associates(준 조직원, 조직 내의 일에 기여는 하나 비 이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정식조직원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마피아 계급)들은 조직에서 나와 새로운 집단을 결성했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Il velo néro는 처음엔 마약밀매와 무기 조달로 세력을 넓혀갔다. 터키에서 마약원료를 들여와 가공해 미국, 멕시코 등 세계각지에 재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여기나 저기나 마약을 찾는 사람들은 엄청났으므로 그 판에서 마약판매는 제일 만만하고 기본적인 수입원이었다. 다른 마피아 조직들은 주로 코카인이나 마리화나를 밀매했기 때문에 Il velo néro는 틈새를 노려 은어로 검은 약이라 부르는 아편을 나르기 시작했다. 정부의 관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Il velo néro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커졌다.

 

 

정부가 다른 것을 신경 쓰는 동안, 마피아의 영향력 밖에서 마피아 등 검은 조직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LSDG(la spada della giustizia, 정의의 칼)는 Il velo néro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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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는 뭐야?”

“모르겠습니다. 한 5년 전 부터인가 천천히 커지기 시작한 모양인데..”

“Covo(코보, 본부를 뜻하는 마피아 용어)는?”

“그것도 아직 미지입니다. 존재가 파악된 지 얼마 안돼서.. 역시 마약과 무기밀매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부에 암호가 있는데 그걸 풀어내는 게 관건이지 싶습니다.”

“젠장. 신경 쓸 일이 늘었구만.”

 

 

“왜요, 뭐 또 발견된 거 있어요?”

 

 

날카로운 인상의 호리호리한, 기껏해야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꽤나 젊은 남자가 입에 수박주스로 추정되는 음료를 물고 한 손엔 서류를, 한 손엔 게임기를 들고 들어왔다.

 

젊지만 빠른 판단력과 깡, 그에 받쳐주는 사격실력으로 잡기 어렵다는 마피아 조직 간부들을 떼거지로 잡아넣으며 초고속으로 승진한, 코드네임 KEN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마피아들에게는 최대의 숙적이었고, 표적이었다. 그럼에도 인생에서 거의 실패한 적이 없어보이는 이 젊은이는 늘 즐거웠고, 당당했다.

 

“카마리니아 쪽에서 커가는 무리가 생겼어.”

“카마리니아? 5년전 쯤에 항구 생긴 곳이요? 또 그런 곳은 기가막히게 찾아내네. 대단하다 대단해.”

“암호도 쓰던데 골때리네.”

“암호야 저희 하루 이틀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런 소규모 조직들은 윗대가리만 몇 명 쳐주면 금방 비틀비틀 하다가 쓰러질 애들이거든요. 아직 처리중인 곳도 있으니 빨리 끝내버리죠.”

“너가 그러다가 한번 크게 데여봐야 고개숙이지? 니 코가 높은 이유가 있었어, 쯧.”

 

 

KEN이 속한 작전1팀, V팀 지휘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아, 이거는 유전이야. 그래서 뭐 입수한 자료 있어요?”

“이것들. 근데 죄다 뭔 지렁이들이라 봐도 모를걸?“

“으엑, 알파벳도 아니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너무 처음 보는 형태라 원래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풀 수가 없겠어.”

“근데, 이것도 R한테 얻었어요?

 

 

R이라 부르는 그 남자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보스파이 비슷한 역할이었다. 이 판에서는 정보의 양이 곧 승패를 가리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정보를 사고파는 일은 비교적 흔했다. 각 조직마다 적게는 한명, 많게는 두 세 명의 스파이들을 두고 필요할 때마다 그들과 비밀리에 접선해 거래하는 방식이었다. LSDG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비밀스파이를 두었고 그렇게 정보를 얻었다.

 

 

 

 

#

 

 

 

 

“...죽었어.”

“네? 죽어요?”

“어제, 암호문을 거래하고 나서 그날 새벽에.. 어떻게 알아냈는지 거처를 알아내 죽인 모양이야.”

“허, 젠장.”

 

 

일종의 경고이자 도발이었다. 규모도 크지 않은 주제에 LSDG에게 경고장을 던진 셈이었다.

 

 

“어디 피라냐새끼들이 겁도 없네.”

 

 

이번에 죽임을 당한 스파이는 꽤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만큼 거래액수는 거액이었으나 거품 없는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정보스파이의 거처를 알아내고 죽였다는 것은, 그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적어도 누가 스파이이고, 어디에 살고, 누가 LSDG의 줄을 쥐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

 

 

“뭐, 이거 해보자는 거네요?”

“그러니까 탱자탱자 놀지 말고 이 지렁이들이 뭘까인지나 생각해봐.”

“이거로는 좀 부족한데.. 어쨌든 잠시 동안은 정보가 많이 들어올 길이 없는 거죠?“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HAN쪽에서 한명을 구했어.”

“믿을 수 있어요?“

“일단 급하니까 부르긴 했는데, 뒷조사중이야. 그래도 han이 데려온 거니까.

 

 

예상치 못하게 큰 기둥을 하나 잃은 LSDG는 조금 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R이 물어다주는 정보들은 전체 직무의 5할은 기여했다. 그래서 그만큼 비밀스러운 곳에 살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살해당하다니.

그의 죽음 후 급하게 섭외된 스파이는 약간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고 키는 큰편이지만 체격은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일단 필요한건 그들의 암호해독문. 입수하기 어렵다면 암호에 대한 다른 정보들.”

“얼마?“

“가져온 거 보고 판단한다.”

 

 

남자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너네도 급하잖아, 아니야? 근데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뱉어낸 말들과는 다르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남자가 말했다.

 

 

“후.. 선5.“

“오케. 그정도면 할만하네.”

“기간은 1주일.“

 

 

남자가 긴 검지로 볼을 톡톡치며 지휘관을 차갑게 내려다봤다.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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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씨발. 알고 보니 애가 정상이 아니야.”

“진정하세요. 어쨌든 이제 같이 가야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게임 한판 같이하실래용?”

“너도 정상은 아니다.”

“사람은 항상 즐겁게 살아야 해요, 모르세요?”

 

 

KEN이 특유의 웃는 얼굴로 히-웃었다.

언제 어디서든 심각한 일로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게 KEN의 인생모토였고, 그래서 ‘항상 즐겁게‘라는 말을 늘상 입에 붙이고 다녔다.

 

 

“저 형, 저래 보여도 머리 도륵도륵 돌아가고 있을거에요. 아시잖아요.”

 

 

코드네임 HAN, 본명은 혁. 약 대여섯년 전쯤에 LSDG에 발탁되어 합류한 젊은 청년이었다. KEN 못지않은 영특함과 뛰어난 컴퓨터 실력으로 역시 젊은 나이지만 3대 조직을 검거하는 일에 제법 역할을 하고 있었다.

 

 

“됐다 됐어, 커피나 한 잔하고 올게.”

 

 

쾅-

 

 

“야. 형한테 도륵도륵이 뭐냐.”

“그러면은 뭐 데륵데륵 돌아가요?”

“이 새끼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둘은 소속부서 내에서 나이대도 비슷했고 말도 꽤 잘 통해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형 표정을 보니 지금 딱 수박주스 먹고 싶네. 맞죠? 가요, 제가 살게요. B동 사내카페 수박주스 맛있던데.”

“아씨, 아니거든?”

 

 

하면서 주섬주섬 신발을 신는 KE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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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뭐 지금 온도가 34도가 넘는데 긴팔을 입냐? 니가 반팔을 입은 걸 본 적이 없어.”

“아 이거요. 제가 햇빛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그러면서 눈을 예쁘게 접어보이기에 더 묻지 않고 카페로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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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까지 알아낸 건 보면, 늘 하던 대로 제일 많이 들어가는 걸 걸렀더니 이 두 모양인데 아마도 이게 l이고 이게 e아니면 i같아.”

“레(le)아니면 리(li)?”

“그렇지. 그 외에는 정보스파이를 기다려봐야 알겠어.”

 

 

“수박주스 톨사이즈 두잔 나왔습니다.“

 

 

“하-역시 인생은 항상 즐겁게 살아야한다. 머리쓰다가 수박주스 한 잔. 환상적이다.”

“별걸 다 즐거워하네요, 형.”

“수박주스를 마시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그건 그렇고 형. 제 쪽에서 알아낸 정보가 있는데 공유해야할 것 같아서요.”

“뭔데.”

 

 

장난기 넘치던 KEN의 눈에 순간 진지한 기운이 차올랐다.

 

 

“다른 암호문인데 여러 문장의 편지형식이라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뭐? 상부에 보고했어?”

“아니요, 아직.”

“그런 게 있으면 빨리 보고해야지.”

“아뇨, 형. 저쪽이 저렇게 우리를 알고 있는 거 보면 너무 내부스파이 냄새가 나지 않아요? 일단 우리끼리 먼저 보고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요. 어차피 해독 저희가 할 거잖아요.”

“하씨.. 그건 그런데.. 일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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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양은 뭐지? 검은베일 문양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걸?”

“왠지 엄청 눈에 익네요,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암호나 봐요.”

“뭐야, 싱거워. 음.. 그럼 이게 le고 이게 li네.“

“그게 e라면 이 부분에 이건 de일까요?”

“응, 아마도. 띄어쓰기가 있으니까 편하네. 아니 근데 왜 대장님이 가져온 건 띄어쓰기가 없고 너가 가져온 건 띄어쓰기가 있지?”

“그냥 전보랑 편지가 쓰는 방식이 다른 거 아닐까요. 전보는 짧으니까 띄어쓰기가 없는거죠. 혹은 자주쓰는 관용 문구라던가 은어라면 띄어쓰기가 없어도 알아볼 수 있으니까?”

“오. 일리 있네. 뭐, 크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그러면 일단 이걸 d로 가정하자. 테블릿 가져왔지? 매칭되는거 불러줄 테니까 프로그램에 입력해, 알지?”

 

 

혁이 들여온 새로운 암호문이 KEN의 머리를 만나 암호해독은 한결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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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새끼들 또. 회의 소집하고 행동1팀 지휘 이홍빈이랑 KEN, HAN 불러.”

 

 

“smeraldo rosso?(레드 베릴 또는 빅스바이트, 레드에메랄드라 불리는 희귀 보석)”

“1캐럿당 1만달러(한화 약 1200만원)짜리야. 마피아 조직중 하나가 이번에 레드베릴을 탈취하려고 했나봐. 그걸로 전시회 협박살인을 냈어.”

“거기 집합지나 코보가 어딘지는 아직 파악 안됐고?”

“응. 그게 할 일이야. KEN, 짐작되는 곳이 있어?”

 

 

지휘관이 이탈리아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전시관이 이쪽에 있나?”

 

 

KEN이 긴 손가락으로 빨간 점이 찍힌 곳을 짚으며 자료를 빠른 눈으로 훑었다.

 

 

“음. 우선 레드베릴부터 보호해야할 것 같은데요. 이거 보세요. 금방인데?”

“어디?“

 

 

KEN이 영상자료의 끄트머리한부분에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게 살짝 찍힌 한 사람을 가리켰다.

 

 

“얘 걔잖아요. 우리 놓쳤던 애. làcrima di dio(신의 눈물)쪽이네. 협박살인에 얘가 참여했다는 건 꽤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나본데? 우선은 홍빈이가 전시장 주변에 애들 몸 숨길 곳 있나 알아봐. 아, 그리고 혹시 전시회장 설계도 같은 거 있으면 찾아와줘. 집합지랑 작전본부 찾는 건 나한테 맡기고. 저기도 저번에 우리한테 한번 당해서 이번에 거기 작전본부찾으면 전처럼 말고 아예 급습해야할 것 같아.”

 

 

여느 때와 같이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대처 방법까지 금방 계산해내는 KE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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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뿐이야?”

“암호에 관련해서는 이것조차도 상당히 얻기 힘들었어. 뭔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뭐 작전내용이겠지.”

“후.. 어쨌든 후입 5는 마저 줄게.”

“음. 그러면 하나 더 뱉을게. 저기 생각보다 작지 않은 거 같더라고? 들은 바로는, 3대 조직들에서 나온 사람들이 꽤 모여 있다고 하던데. 조직원들도 대체로 젊나보더라구, 보스는 모르겠지만.”

“3대 조직?”

“응. 그러니까 아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만만치 않은 것 같고, 이미 벌써 다른 조직에서도 알고 쪼이는데도 꿈쩍을 안 해. 그리고 뭐, 새로 짜인 데라 그런가 거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루트가 별로 없어서. 그런 의미에서, 난 손 뗀다.”

 

 

남자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뭐? 갑자기?”

“난 어차피 너희 소속도 아니었고, 일개 스파이주제에 목숨을 걸고 너네랑 같이가기에는- 내가 너무 소중해서.”

 

 

남자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이더니 손을 터는 시늉을 하며 말하고는 나갔다.

 

 

 

 

#

“아니, 그냥 그렇게 갔어요?“

“어.”

 

 

V팀 지휘관이 잔뜩 화가 나서 파일을 집어던지며 성을 냈다.

 

 

“뒷조사 끝날 때까지 계약 안하려고 했는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이야.”

“후.. 복잡하게 됐네. 아 참, 이따가 암호 관련해서 회의 열어야겠어요. 행동 1팀 이홍빈 지휘관도 같이 불러주세요.”

“암호 어느 정도 알아낸거야? 벌써?”

“네. 어느정도는요. 대충 읽어낼 수 있어요. 혁이는요?”

“저번에 신의 눈물 협박사건 급습 오늘이잖아. 거기 집합지 뚫으러 갔어. 말썽피우던 caporegima(카포레지마, 부지부장 정도의 개념으로, 휘하에 몇 명의 정식 일원들을 두어 킬러들을 관리하는 마피아 계급)새끼들 둘 이번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저번에 KEN이 고위 간부들을 떼거지로 잡아넣었던 그 조직이다.

 

 

“으엥? 거기를 혁이가 갔어요? 사이티나?“

“응. 너가 추린 대로 사이티나로 두 팀 짜서 보냈어. 집합지 급습이야 간단한 거니까 자기가 가겠다고 하더라.”

“다 쓸지 말고 간부들만 처리하라고도 하셨죠? 아래 떨거지들은 남겨놔야 나중에 크게 칠 수 있다고요.”

“당연하지, 지금쯤이면 완료하고 복귀할 때인데. 복귀연락 받았거든.”

 

 

일상이 총알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다들 큰 건이 아닌 싸움판은 그러려니 했다.

 

 

“혁이도 오랫만에 현장뛰네. 그렇게 뻔하게 움직일 거면서 왜 그러는지. 근데 저번에 그렇게 잡아넣었으면 잠깐 숨죽일 때도 되지 않았나? 많이 궁했나.”

 

 

그 때 임무를 마치고 온 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복귀했습니다. 임무 완료 보고드립니다. 집합지는 역시 사이티나에 있었고, caporegima 두 명 잡아다 처리했습니다. 작전 나갔던 행동 2팀 약한 총상 두 명, 나머지는 괜찮습니다.”

 

 

“수고했는데 너 팔은 왜 그래?”

 

 

피가 살짝 묻은 셔츠를 보고 KEN이 달려갔다.

 

 

“스쳤어? 여기 그을음은 또 뭐야?”

“조금? 너무 얕봤나봐. 괜찮아, 뭐 이 정도는 금방 낫잖아.”

 

 

혁이 피가 묻은 셔츠 쪽 몸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야! 그래도! 간단한 건데 다쳐서 오면 어떡하냐!“

 

 

KEN이 반대쪽 혁의 팔을 찰싹찰싹 치며 화를 냈다.

 

 

같은 시각. 사이티나에서는 작은 불길이 조용히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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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다 나왔네. 휴, 꽤 오래 걸렸다. 근데 내용은 별 거 없네.”

“그러게요, 그냥 거래내역들 뿐이네요. 아깝다.“

“근데 이건 불 붙이는 가스이름아니냐?”

 

똑똑-

심도 있는 대화를 노크소리가 갈랐다.

 

 

“팀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요원 한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제 잠입했던 신의 눈물 작전본부가 폭발했습니다.”

“갑자기? 폭발?”

 

 

KEN과 혁이 눈을 맞췄다.

 

 

“네. 어제 새벽에 폭발했다고 합니다. 조직 간의 경쟁 때문인 것 같은데, 그냥 본부도 아니고 상대 작전본부를 폭파시킨 적은 거의 없어서 보고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하, 폭발, 우와 이거 재밌을거 같다!

“예?”

 

 

요원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KEN을 쳐다보았다.

 

 

“예상은 못했지만 예상했지! 내가 또!”

“그게 무슨?”

“아냐아냐, 알겠으니 일단 나가봐. 아, 카마리니아 주변에서 일어나는 방화 사건들 집중해서 자료 모아줘. 특히 폭발사건.”

 

 

덜미를 잡았다는 듯 KEN의 눈동자가 즐겁게 빛났다.

 

 

 

 

#

 

 

 

 

정보스파이 살인사건 이 후, 암호해독과 시칠리아 내부의 방화사건 분석, 전시회 협박살인, 미국으로 들어가는 불법체류외국인 52명 밀출입 현장검거 등 한 달이 안 되는 사이에 꽤 큰일들이 여러 번 터졌다. 바로 어제는 스위스 은행에서 수상한 돈의 흐름을 발견해서 어떤 조직이 돈세탁을 한 건지 조사하느라 바빴다. 비록 KEN이 직접 현장을 뛰러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현장만큼 고단한 게 작전계획과 명령이었기에 근 한달간 KEN은 계속 부서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행동 팀에 비해 인원수가 훨씬 적은 작전 팀이라 더 그랬다.

 

 

“형, 쉬면서 해요. 수염이 이만큼 자랐네.”

 

 

혁이 한손에 수박주스를 들고 들어왔다.

 

 

“재미없다. 그리구 나 수염 반영구제모 했거든. 흐아, 살려줘, 죽을 것 같애. 이 새끼들 마음 같아서는 진짜 검은 베일처럼 다 터뜨려 버리고 싶다. 그쪽한테 터뜨려 달라고 부탁할까. 나 진짜로, 진짜로 진지해.”

 

 

KEN이 짙은 눈썹을 팔자로 찡그리고 볼을 퉁퉁히 부풀리며 칭얼댔다.

 

 

“그거 내꺼지?”

 

 

그러고는 혁의 손에 있는 수박주스를 향해 두 손을 쭉 폈다.

그 모습에 혁은 짧게 푸스-웃으며 KEN에게 수박주스를 건넸다.

 

 

“앗 차거.”

 

 

KEN이 두툼한 입술로 수박주스를 한번 힘껏 들이켰다.

 

 

“그래도 이깟 수박주스로는 지금 내가 기분이 즐거워지지않아. 아냐,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마음가짐을 즐겁게 먹어야지.”

 

 

일이 많아서인지 약간은 제정신이 아닌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켄이었다.

 

 

“야, 혁아 봐봐. 형이 또 농구 실력 보여준다, 아 얼른 봐봐!”

 

 

KEN이 수박주스에 깊게 박혀있던 빨대와 뚜껑을 빼내 그간 담아뒀던 스트레스를 풀 듯 아그작 구겨 저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던졌다.

 

 

툭-

빨대와 뚜껑이 쓰레기통 겉 비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졌다.

 

 

“아, 뭐예요 형. 팀장이 저것도 못 넣으면 어떻게 해요. 팀장이 가오가 있지.”

“에, 그러게, 나도 좀 당황.. 많이 힘든가보다 내가..“

 

 

KEN이 넥타이를 이리저리 흔들어 푸르며 뚜껑을 쳐다보다 힘없이 의자에 기댔다.

 

 

“그러면 방화사건 조사는 제가 할까요?”

 

 

혁이 콕 집어 방화사건을 얘기했다.

 

 

“형이 팀장이니까 지시만 내려주시면.“

 

 

또 눈을 예쁘게 접어보이며 KEN에게 배우처럼 경례했다.

KEN이 이 눈웃음에 약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듯.

 

 

“호엥? 그럴래?”

 

 

KEN이 마침 잘 됐다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네, 뭐 다른 건 아니고. 형 힘드니까요. 안쓰러워서 볼 수가 있어야지. 이래서 천재는 힘들어요. 그래서, 어디어디 터졌어요?”

“야, 대장님한테는 비밀이다. 알지?”

“당연하죠, 일개 요원에게 맡겼다는 거 알면 또 온 사무실 서류 뒤집어 놓을걸요.”

 

 

켄이 짧게 흐흐 웃었다 표정을 바꿨다.

 

 

“대장님이 항상 즐겁게 사셔야 하는데. 일단 아직까지 딱히 큰 건은 안 터졌고, 그냥 소소한 방화사건들? 방식이나 장소들을 보면 딱히 저쪽 짓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아.”

“음, 확실히 그러네요. 이 방화사건들은 제가 맡을 테니까 형은 안심하고 다른 거 하세요.”

“짜식, 내가 후배하나는 잘 키웠구만!“

 

 

KEN이 자기보다 높이 있는 혁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후드득-

쓰레기통에 걸쳐졌던 뚜껑이 바닥에 안쓰럽게 떨어졌다.

 

 

 

 

#

 

 

 

 

그 후 며칠간은 KEN이 각성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외부에서도 그리고 LSDG 내부에서도 여러 자잘한 일 외에 별 다른 큰 일이 새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단지 한꺼번에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는 KEN 만이 여전히 개인 사무실 안에서 죽어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혁이 조심스럽게 켄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크를 안 하고 들어올 수 있는 건 대장님, 아니면 혁이었기에 켄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대답했다. 대장님이 지금 들어 올리는 없으니까, 저건 분명, 보지 않아도 혁일 거라 생각하며.

 

 

“이러다 죽는 걸까.”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근데 왜 왔냐. 괴롭히러 들어온 거면 조용히 손들고 반성하면서 나가시고, 이럴 때 나 건드리면. 아, 혹시 방화 관련된 일은 뭐 잡히는 거 없고? 신경을 못 썼네.”

“안 그래도.. 그거에 대해서 얘기하려고요. 저번에 신의 눈물 쪽 한번 털고 코보 폭발하고 나서, 사이티나 옆에 코스노바 관할 경찰국이 터졌어요.”

“코스노바 경찰국이 터져? 거기 사이티나 주의해서 보라고 너가 알려둔 곳 아니야? 안에 경부들은?”

“근데 경찰국장과 변호사, 정예형사들만 발견이 안됐어요.”

 

 

음?

 

 

“뭐? 그 말뜻은?“

“그러니까, 사라졌어요, 그냥”

“주변cctv는? 안에 경보 시스템은? 그렇게 없어지는 게 가능해?”

“cctv는 부서진 지 오래에요. 안에 시스템은 어떻게 된건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제가 크래킹해봐야 알 것 같고요. 시스템이 자동감시인데도 완벽하게 망가졌어요. 아마.. 제가 경찰국에 맡겨두고 믿고 냅뒀던 게 화근인 것 같아요.”

“아.”

“..죄송해요.”

“..아냐, 감시를 경찰국에 맡겨놨으니 안심되는 게 맞지. 그것도 코스노바인데. 후.. 일단 대장님께 알리고 다시 얘기하자.”

 

 

혁이가 실수를 하다니.

어떤 일이든 다른 조직 예컨대 경찰국이나 언론사등의 도움을 받을 순 있지만 상대가 누구건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였다. 본인이 베기 시작한 나무는 본인이 쓰러뜨려야 하는 거였다.

 

나라면 안했을 실수지만. 그리고 왜인지도 이해는 가지만.

역시 맡기는 게 아니었나.

 

 

아,

근데,

존나 까이겠다, 젠장할.

 

 

코스노바. 사이티나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도시로, 그곳엔 그 주변도시들을 관리하는 경찰국 하나가 있었다. 사실 경찰국 슬하의 경찰관들이 많았을 뿐이지, 경찰국 내부에 있는 간부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경찰국장, 정예 형사들 몇 명, 그리고 변호사 몇 명. 그런데 지금, 10명 정도의 경찰간부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뭐지? 뭔가..

 

 

“혁아.”

“네, 형.“

“너 혹시..일부ㄹ”

“네?”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니야. 일단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

 

 

이 새끼들은 내가 꼭 내 손으로 조진다.

 

 

  

  

#

 

 

 

 

“제대로 안 할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후.. 일단 내부 시스템 어떻게 뚫린 건지부터 크래킹 해보고, 검은 베일 쪽인지도 조사하라 해. 아니 걔네가 실력이 아무리 좋다해도 10명을 싹 쓰는 게 가능한건지, 참나. 일단 켄 너는 방화관련해서는 아예 손 떼.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밑에 애한테 맡겨?”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집중해서 보고 처리했었어야 하는 일인데.”

 

 

현재 LSDG 최대의 관심사인 검은 베일에 관련된 문제를 위에 보고하지도 않고 하위 요원에게 넘겨버린 것에 지휘관이 큰 화를 냈다.

사실 켄 앞에서 혁은 거의 그런 적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실수가 적었고, 켄이 일을 처리할 때 매번 큰 도움을 주었다.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작전현장을 페어로 뛸 때도 정말 훌륭하게 켄의 어시로 합을 맞춰주었다. 그래서 켄은 더더욱 혁을 믿게 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이번 검은 베일에 관련해서는 혁은 암호추리부터 큰 기여를 했기에 켄은 한 치의 의심 없이 혁에게 맡긴 것인데.

 

그것도 판단미스, 안일함 때문에 일어난 실수라니.

 

 

쾅-

 

 

v팀 지휘관이 잔뜩 화가 나 회의실을 나간 후, 내부에는 싸한 기운만이 남았다.

혁도, 함께 있던 행동팀 지휘 홍빈과 몇몇 요원들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켄이 잔뜩 예민해져 있을 때라는 것도,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자존심 센 켄이 저렇게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단 것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일단 나가봐.”

 

홍빈이 먼저 적막함을 깨고 요원들에게 말했다.

 

아까 고개 숙이고 있던 그 자세 그대로 서있던 켄이 눈을 꾹 감은 채 입술을 물었다.

 

 

“형. 진짜..진짜 죄송해요. 제가 잘 만 했어도..”

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몇분의 차가운 정적 후,

켄이 생각을 다 정리 했다는 듯 갑자기 고개를 쳐들더니 혁과 눈을 마주쳤다.

 

“아냐, 야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일은 이미 터졌는데 우울해해서 뭐해, 즐겁게 살아도 모자라다. 일 하나 줄었네, 뭐.”

 

켄이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부진 애를 썼다. 승부욕이 엄청난 켄이었기에 손 떼라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말과 전혀 매치가 안되는 켄의 표정을 본 홍빈이 푸흐 웃으며 켄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래, 우리 켄팀장님 할 일 많았잖아. 내일 파나티스모 쪽도 한번 현장 뛰러가야 되고. 켄팀장한테만 너무 일을 많이 준거 아니냐, 나는 냅두고. 나도 똑똑한데. 하긴 나는 작전팀이 아니지.”

 

홍빈이 시덥잖은 농담을 던졌다.

 

“흐잉, 그래도 그 새끼들은 꼭 내가 잡고 싶었는데. 암호 해독부터 내가 거의 다했는데. 쫌만 더 있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에! 씨이..”

 

켄이 반지를 3개나 낀 손으로 책상을 쾅쾅 쳤다.

짜증나는데 게임 한 판 하고 해야지.

 

 

 

 

#

 

 

 

 

“아니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지금 규율이 중요해요? 건물이 다 빵빵터져서 사람이고 뭐고 재가 되게 생겼는데?”

 

 

홍빈이 성질을 냈다.

 

 

“켄팀장 아니면 끝 못봐요. 한도 거의 이번이 처음 실수잖아요. 큰 그림을 봐야죠. 큰 일이 터지긴 했지만 판단미스 하나 났다고 잘라버리시면 어떡해요. 켄팀장도 한이 믿을만 하니까 맡겼겠죠. 생각 없는 사람도 아니고.”

 

 

홍빈이 화를 내는 건 거의 드문 일이었다.

 

 

 

#

 

 

 

똑똑-

“켄팀장님, 바쁘십니까?“

 

 

홍빈이 켄의 개인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어, 홍빈! 웬만한건 끝났어. 원래 같으면.. 신나서 검은 베일 파고 있었을텐데, 힝.”

 

 

켄이 어린아이처럼 팔짱을 착- 끼고 우는 시늉을 했다. 속은 말이 아니지만 홍빈이 걱정할까봐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켄이었다.

 

 

“대장님이 다시 보래. 대장님이 화는 많아도 앞뒤가 꽉막힌 꼰대는 아냐.”

“어? 정말? 나한텐 아직 그런 말 없었는데?“

“이 소식을 전하는 건 아마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빠를걸.”

 

 

홍빈이 입동굴을 만들며 씩 웃었다.

 

 

“너가 가서 말했어? 진짜?”

 

 

홍빈의 말을 단번에 이해한 켄의 안그래도 땡글한 눈이 더 땡그래졌다가, 곧 환희가 일렁였다.

 

 

“예! 홍빈! 예, 홍빈 빠샤! 역시 내 동생, 사람은 항상 즐겁게 살아야 된다!”

 

 

텐션이 급격히 업된 켄이 홍빈을 잡고 마구 흔들며 내적 즐거움을 밖으로 퐁퐁 뿜어냈다.

 

 

“아 알겠, 아 알겠어, 그만 좀. 형이, 계속, 즐거운거랑, 뭔 상.. 아 이형 또 텐션업됐어. 아 그만해, 아 쫌, 놔봐. 아 어깨 아파, 악, 놔라.”

 

 

벌컥-

 

 

“켄 너... 어? 뭐야 이 장면은. 내가 눈치없이 방해한건가? 오우, 암쏘리. 하던거 마저 해, 난 이따가 다시올게.”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지휘관이 서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한 명은 상대의 어깨를 잡고 한 명은 상대 가슴팍에 손을 얹고, 서로의 눈을 지긋이-그가 느끼기에는-쳐다보고 있는 둘을 보며 눈썹을 들어올렸다.

 

 

“아니, 아니에요. 대장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니에요. 아냐, 아니야.”

 

 

홍빈이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켄의 가슴팍을 밀쳐 쳐냈다.

 

 

“뭘 또 그렇게 심하게 부정을 해, 동생! 증말.. 켄이 삐질거야?”

“쟤 기분이 왜 이렇게 좋아? 아, 너 벌써 말했구나. 맞아, 내가 화가 나서 막 말했는데 너 아니면 해결 안되겠어서.”

“대장님!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뽀뽀 받으실래요? 움뫄!“

“일받고 저렇게 기뻐하는 건 내가, 참내, 웃겨가지고. 한이랑 같이하던지 그건 네가 알아서 결정해.”

 

 

지휘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켄팀장 이거 엄청 맡고 싶어했어요, 방화조직은 신선하다면서. 저 사람은 그냥 이쪽에 특화된 사람인 것 같아요, 참. 머리쓰고 총쏘고 피보고 하는 게 뭐가 좋다고. 더 늙기 전에 많이 써먹으세요.”

“자, 이제 다들 나가요! 나 일해야한다 일!”

 

 

켄이 엉덩이를 빵실하게 흔들며 컴퓨터 의자쪽으로 걸어갔다.

#

(BGM-trigger)

 

 

 

“신호 보내면 뒤쪽부터 하나씩 쏴. 총이나 무기 들고있는 손이랑 다리만 조준하는거, 알지? 예상인원 많으니까 집중하고. 쟤네도 큰데라 자칫하면 몸에 구멍난다. 다들 무전기 인이어 신호 들리는지 확인해. 총탄 장전까지 확인.”

 

 

켄이 몇년을 함께해온 피스톨-켄은 그것을 샐리라 불렀다-을 장전한 뒤 한번 고쳐잡았다.

 

 

“위치로.”

 

 

몇명의 행동팀 요원들이 각자 배치된 자리로 소리없는 뱀처럼 스슥 움직였다.

 

 

“들어온다. 3, 2, 1, 지금.”

 

탕-

탕-

으윽-

 

검은 수트를 입은 장정들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오다 총을 맞고 하나 둘 쓰러졌다.

실탄이 이리저리 자유비행을 하고 있는 와중에 켄은 컨테이너 내부를 빠르게 훑으며 현장을 파악했다.

 

쟤다.

 

무서운 직관력으로 상대편보다 빠르게 파나티스모의 카포레지마를 파악한 그는 주저함 없이 정확하게, 카포레지마의 두다리를 쐈다.

 

“악, 씨발!”

 

 

다리를 맞은 카포레지마가 총을 들어 켄의 어깨를 조준하며 쏘려 했으나 한 발 빠른 켄에 의해 총이 아드득- 부서졌다.

 

 

“그걸로 뭘하려고 하셨을까! 나한테 선물주려구?”

 

 

켄이 그를 향해 상큼하게 윙크를 한 번 날린 후 작전을 종료시켰다.

 

 

“남은 애들 마저 정리하고 작전종료한다. 부상자는 지금 보고해.”

 

 

치직-

 

 

“예, 대장님. K-3구역 작전종료했습니다. 지금 복귀합니다. 총상 3명, 둘은 팔이고 하나는 다리쪽입니다. 의료팀 준비 시켜주세요.”

 

 

 

 

#

 

 

 

 

파나티스모의 30명 남짓한 조직원들과 카포 한 명을 정말 가뿐히 소탕하고 온 켄은 지금, 지휘관에게 칭찬을 받아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다. 뭘 하든 늘 받는 칭찬이지만 켄은 매번 처음인 것처럼 좋아했다.

 

“혁아, 혁아-”

“어? 형. 잘하고 왔나 보네요, 걱정했는데.”

“야 임마, 내가 널 걱정해야지 니가 날 왜 걱정해, 자존심 상하게. 아, 그 뭐냐, 대장님이! 검은 베일 다시 해도 된다 그래서.”

“아 진짜요? 잘됐네요.”

 

 

근데 혁이 표정이 약간.

아직 나한테 미안해서 그런가?

 

 

“응, 근데 대장님이 너랑 같이 하든 말든 상관없대. 그러니까 나좀 도와줘.”

“당연하죠. 형이 다시 저한테 SOS 칠 줄 몰랐는데, 영광이네요. 그 경찰국 터진 거 아직 보고있는거죠?”

“어떻게 알았냐? 10명 사라진 거 너무 미스테리야. 진짜 간도 커! 참나. 일단 내 아지트(켄이 본인의 사무실을 이렇게 부른다)로 가자.”

 

 

“크래킹 결과가 이거에요.”

“우회서버?”

“네. 우회서버를 아예 새로 만들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추적 안당하고 뚫어버린거죠. 누군지 머리 좋네. ”

“마피아 조직중에 해킹하는 애들도 있냐. 진짜 마피아계의 4차 산업혁명도 아니고. 으아. 무식하게 몸만 쓰는 애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내가 프로그래밍까지 배워야해? 힝이다 힝.”

“저 있잖아요. 아참, 지금 코스노바 난리에요, 경찰국 터졌다고. 신문 봤죠?“

“응, 근데 10명 사라진 건 언급 안됐던데? 분명 검은 베일이 어딘가 언론에 돈을 썼거나 뭘 했을 거야. 뭔가 10명이 사라진 게 되게 숨길만큼 중요한가봐.”

“아 그런거구나.“

“코스노바 그쪽이 어느조직쪽 구역이지?”

“신의 눈물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걔네가 경찰국도 잡고 있었을거야. 얘네 손 안댄 데 없어. 신의 눈물 쪽에서 경찰국 내세워서 검은베일쪽에 뭘 했으니까 검은 베일이 빡쳐서 다 태웠겠지. 가능성 있지?”

“오우, 되게 빠르게 알아내네요. 역시 켄이다. 음, 그러면 만약에 진짜로 신의 눈물이 경찰국에 로비를 넣은 거라면 경찰국사람들이 없어진 게 알려졌을 때 바로 신의 눈물이랑 짱뜨게 되는 거 아니에요? 아 대박. 그래서 그런거구나. 그럼 검은 베일이 어쨌든 10명을 납치한거고..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는 거네요.”

“그렇지. 이 새끼들 진짜 지능적이고 생각보다 치밀하네. 하는 짓이 약간 너같다, 킥.“

“나요? 지능적인건 맞는데.”

“엉. 너 맨날 나랑 게임하면 어? 맨날 엄청 지능적으로 나 멕이잖아.”

“허, 그건 그냥 형이 못하는 거 잖아요. 그러게 왜 맨날 당해, 나는 나름 매번 빠져나갈 여지를 준다구요.“

“..이따 한판 떠. 아무튼! 10명을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쪽 코보고 거점이고 집합지고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까, 그걸 알아내는 걸 우선으로 해야할까. 뭘 자꾸 터뜨리기는 하는데 생각대로 움직이지를 않으니까 진짜 짜증나네. 신의 눈물이 뭘한거지? 경찰국을 꼬셔서 할 수 있는게.. 아, 헐. 혹시 검은베일 거점이 코스노바 그 주변 어디인가?”

“오, 그럴듯 한데요. 그 주변이니까 신의 눈물이 경찰국에 로비를 넣어서 못 커지도록 조였다? 근데 검은 베일이 간이 커도 그렇지 미쳤다고 대놓고 신의 눈물 구역옆을 먹으려고 한다고요?”

“그렇지. 대놓고 사이티나나 코스노바 옆을 차지했을리는 없고 그쪽 어디인가봐. 신의 눈물이 수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설마 그 옆으로 먹고 들어갔을 리가. 어쨌든 검은 베일 얘네 시작은 카마리니아쪽이라면서. 카마리니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코보가 있으면 어차피 세력 분산돼서 지네들도 관리하기 힘들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북쪽해안선은 다 파나티스모쪽이에요.”

“맞네. 그러면 카마리니아 쪽 부터 코스노바 주변 도시들까지 집중하면 되겠다. 야금야금 잘 먹어들어가네 얘네.”

 

 

켄은 또 히-웃음지었다.

 

 

 

 

#

 

 

 

 

“그 데이터 담겨있는 하드어딨지?”

“아, 그거 제가 B동에 정보백업하라고 두고 왔는데 갔다올게요.”

“아니야, 내가 가도 돼.”

“형 달리기 저보다 느리면서 무슨?”

“그런말 할거면 그냥 닥치고 갔다와.“

 

 

 

달칵-

 

 

치지직-

 

 

화르르르-

 

 

펑!

 

 

 

“으악씨! 깜짝이야. 뭐야?”

“B동쪽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젠장, 또 뭐야? 일단 불부터 꺼!”

“저기에 방금 혁이 갔는데?“

 

 

B동, 그러니까 조직의 회계와 컴퓨터베이스에 관련된 업무를 보는 동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본부 전체에 약간 특이한 가스냄새와 함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때 혁이 사무실동 입구로 뛰어들어왔다.

 

 

“허억, 헉.”

“혁아!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나오다가 폭발이 일어나서.. 그보다 안에있는 사람들 먼저..”

“너는 일단 안에 들어가서 검사 받아봐! 혹시 모르잖아. 저쪽에는 내가 가볼게.“

 

 

걱정하다 혁이가 급하게 뛰어들어오니 안심한 KEN은 그제서야 상황을 보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회계부 회계사 1명이 폭발을 직접적으로 맞았는지 3도화상 중상에 의식불명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거의..”

“폭발원인은?“

 

 

KEN이 마른세수를 벅벅하며 물었다.

 

 

“누군가 방화한 것 같습니다.”

“방화? 방화라고 했어?“

“네. 폭발이 워낙커서 정확한 발생지점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만, 내부에서 디에틸에테르(끓는 점이 매우 낮은 인화성액체, 기체로 변하면 폭발하기 쉽다)가 감식되었습니다.”

“디에틸에테르? 완전 전문이네. 후.. 어떻게 들어왔지? 잠입경로도 확보된거 없고?”

“아직 파악중입니다. 우선 경보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일단 알겠어, 수고좀 해줘.”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KEN은 이를 부득 갈았다. 감히 본부를 털 생각을 하다니. 대체..

 

LSDG는 공개적인 조직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엄청 비밀리에 움직이는 곳도 아니었다. 물론 정부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엄밀히 말하면 마피아들 때문에 돌아가는 활빈당같은 사조직에 가까웠다. 그랬기 때문에 본부파악쯤이야 이 판에서 좀 버텼던 마피아 조직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잠입한거지? 정말 내부스파이일까? 늘 움직임을 먼저 읽고 앞서서 덮쳤던 KEN이기에 예상치 못했던 급습에 더 당황스러웠다.

 

검은 베일은 일반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들과는 확실히 좀 패턴이 달랐다. 예상에 없던 새로운 암호문 형식, 대담하게 터뜨리는 패기, 도발, 마치 LSDG의 동행을 다 알고있는 듯한 움직임. 기존에 있던 마피아 조직들은 조직 내의 규율, 그들만의 계급을 매우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활동에 어느정도 예상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 일이던지 공개적이기 보다는 비밀리에, 은밀하게 처리하고 숨어들었었다. 다른조직들과는 LSDG도 꽤 오랜시간 대치했기에 어느 정도는 서로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고, 그 조직들은 오래된 만큼 체계적이었지만 보수적이었다. 사실, 그들이 대담한 짓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나왔다가는 LSDG의 젊은 요원한테 바로 덜미를 잡혔기 때문에.

 

 

하지만, 검은베일은 아니었다.

#

 

 

 

 

 

조직본부 폭발 이 후, LSDG의 모든 요원들은 독기를 품고 검은 베일을 쫓았다.

 

 

“사무실도 터지고, 지금부터 검은 베일에 집중한다. HAN이 브리핑한다고 했으니까 다들 우선 집합해.”

 

 

“지금 이 부근이거든요. 여기에 경찰국이 있었었고. 켄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의 눈물쪽에서 검은 베일 때문에 경찰국에 로비를 넣었다면 거점은 여기 시칠리아섬 남쪽 카마리니아에서부터 코스노바 위쪽 거쳐서 북쪽 해안도시 아래까지 예상하면 될 것 같아요. 저번에 신의 눈물 작전본부 폭발은 여기서 일어났고. 바다건너 이탈리아에서 이미 한번털린 여기까지 굳이 일부러 불붙이러 오는건 이상하니까, 그런걸 고려하면 시칠리아 섬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아요. 섬내부에 유령회사들이나 공장부지 중심으로 파악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켄에게 방화사건을 지시받은 혁이 회의에서 또박또박 브리핑했다.

 

 

“음, 시칠리아에 경비 허술한 도시가 몇 개 되네. 카마리니아는 주변이 워낙 촌구석이었어서 다들 만지지도 않았구나. ”

“네. 그래서 그 도시들 중에서 몇개 뽑아서 잠복하면 뭐라도 잡을 수 있을거에요. 마약거래 장소라든지 방화 계획이라든지. 저쪽이 알아채고 접선장소를 바꾼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요. 대충 꼽아보면 일반적으로 일치는 패턴을 봤을 때 마땅한 곳은 이 두 곳. 제일 기본적으로 이탈리아랑 연결된 항구랑, 코스노바 이쪽은 이미 다 터뜨리고 갔으니까 패스하고 그 옆 베리나 쪽.”

“좋았어. 레오 선두로 잠복시키고 동태살피자. 혹시 찾더라도 덮쳐버리면 그쪽이 알아채고 계획바꿀 수 있으니까 조용히 잠입해서 녹취만 해와, 큰 그림을 위해서. 그리고 어떤 조직이 벌이는 살인사건이든 방화든 일단 다 잡아가져와. 뭐든 일단 경찰보단 먼저 움직여야 돼.”

 

 

켄의 눈이 반짝였다.

 

 

잠복 2일째, 항구쪽에서 정보거래 접선현장을 찾아냈다.

 

 

 

 

#

 

 

 

 

“이게 뭔지 어서 대조해봐. 이 지렁이들.“

 

“지휘관이 약간 노란, 에이포 반만한 용지두장을 펄럭거리며 켄에게 말했다.”

“혁이가 프로그램에 넣어놨어요. 저 할 거 많거든요, 진짜, 대장님! 거기 그 오리스티커 붙어있는 하드, 어어, 그거요. 하는 김에 녹본도 좀 넣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켄이 오른쪽 입술을 빼죽 들어올렸다.

 

음, 좀만 더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겠군.

 

지휘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드를 집어들었다.

 

지금 켄은 떨어지는 떡밥에 즐겁기도 했지만, 이제 정말 검은 베일의 검은 베일을 벗길 때가 다가옴을 느껴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평소에는 휘이 늘어지는 눈웃음을 달고 실실 잘 웃고 다니면서도 누구에게나 싹싹하며 조금은 능글맞은 켄이었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일이 많아 예민할 때는 180도 바뀌었다. 으레 평소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화나면 무서운 법이라, 켄이 예민해질 조짐이 보이면 조직 내 요원들은 그 지위에 상관없이 그에게 혼자 있을 여유를 만들어 주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이렇게 움직이는거 보면 저쪽 대가리가 나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직 코보 파악은 안됐지?”

“코보는 아직이요.”

“그래도 현장녹본으로 검은 약 거래업체는 적발했고 접선장소도 뜷었어. 우리쪽 행동팀이 털러갈거야. 오늘 새벽 3시.

“일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는데? 그럼 그새끼들 간부들도 나올테니 같이 털어넣으면 되겠네.”

“아뇨. 그쪽이 그렇게 만만하진 않을 것 같은데. 좀.. 뭔가 냄새가 나요. 저쪽이 우리한테 대응하고 있는거 보면 다 우리의 예상과는 좀 다르게, 한 수 더보고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도 평소대로 대응하면 안됩니다. 저기에 병력썼다가 다른 곳에서 일칠 수도 있어요. 우선은 확실하지 않은 곳에는 최소 인원만 투입해도 될 것 같아요.”

“켄 말도 일리가 있어. 현장엔 행동 1, 2팀중 정예만 최소로 보내고 다른 팀들은 우선 대기해.”

 

 

 

#

 

 

 

 

“1팀은 항구 다리 밑쪽 잠복하고 2팀은 퇴로 차단해.”

 

탕-

 

타탕-

 

“K-8 현장수습 완료했고 마약은 수거했습니다. 우선 복귀하겠습니다.”

 

 

 

“그런데 검은 약이 아니라 코카인이에요.”

“뭐?”

“저기는 검은 약 나른다면서요. 근데 코카인이에요. 전보랑 달라요.”

 

 

켄이 보고된 자료를 보며 심각한 얼굴로 탁자를 톡톡 치며말했다.

 

 

그렇다면 암호문이 잘못된거거나 저기가..

 

“암호문이 잘못되었을리는 없어요. 혁이가 준 편ㅈ”

“형.”

“아, 혁이가.. 저랑 같이 해독한거고 다 맞아 떨어져요. 우리가 뭔가를.. 놓친게 있는거 같은데.”

 

 

그 전보안의 마약거래 대상이 검은 베일이 아니라면?

 

켄이 짙은 눈썹을 한껏 찡그렸다.

겨우 고쳤던 손톱물어뜯는 습관이 다시 튀어나왔다.

 

“정보교란?”

“..알아 챈 것 같아요. 우리가 암호문을 푼 걸요.”

“우리가 너무 눈에 띄게 움직였나.”

“그럴까봐 일부러 현장을 덮치지도 않았는데, 알아챈다구요? 뭔가 이상한데. 내부 스파이 아니면 설명이 안돼요. 말도 안돼, 이건.”

 

켄이 즐거움을 잃은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그랬다. 엘에스지디가 암호문을 가지고 있단 걸 내부 관계자 아닌 이상 알 리가 없었고, 그들은 엘에스가 접선장소에 접근 했는지도 몰랐다. 때문이 그들이 벌써 암호를 풀었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했다.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어디에선가 꼬리가 잡혔을거라 생각하고 서로의 접선 장소를 바꾸거나 기껏해야 작전 본부를 옮기는 정도일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우리 건드리지 말고 다른 조직을 잡으라는 듯이 다른 조직의 접선현장을 굳이 전보에 써서, 자신들의 접선위치를 노출시켜가며 정보교란을 일으켰다. 검은 베일 보스가 미쳐도 제대로 미친게 틀림없었다. LSDG를 맘대로 주무르려 하고있었다.

 

 

 

#

 

 

 

 

“대장님, 대장님! 어제자 보고입니다. 미사일 도안파일에 수상한 움직임이 발견되었는데 검은 베일 쪽인 것 같습니다.”

“미사일 도안을 털었다고? 미사일도안? 얘네들이 드디어 미쳤구나.”

 

뚜르르-

“네.. 여보세요..”

아직 동도 안튼 새벽에 지휘관의 연락을 받고 깨버린 켄의 목소리가 한껏 잠겨 허스키해져있었다.

“얘네가 드디어 일쳤다. 미사일 도안을 털었댄다. 이거 조금만 늦어서 거래현장 파악 못하고 새끼들 튀어버리면 도안 유출되는거야.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아..네..그러니까 미사일 도안을... 털었다구요.. 대장님은.. 내..잠을 털었고...대단하..다..

미사..일...예? 미사일 도안이요?”

“야! 당장 튀어와!”

 

새벽에 강제로 소환된 켄, 한, 홍빈 세사람의 차림새는 국가적으로 활동하며 마피아들을 잡아넣는 조직의 조직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켄은 흰 반팔티에 짧은 반바지, 슬리퍼만 신고 머리는 머리로 설거지를 한 듯 붕 떠서는 뛰어왔고, 한은 파란 줄무늬파자마, 홍빈은 줘도 안입을 것 같은 디자인의 티와 회색 츄리닝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과 표정은 영락없는 프로조직원의 것이었다.

 

“아니 그래서 뭐 도안을 턴 경로는 뭐예요? 컴퓨터 해킹?”

“응. 국방부 시스템을 뚫은 것 같아. 저번에 코스노바 건도 그렇고 조직 내부에 컴퓨터를 엄청 잘다루는 사람이 있는 게 틀림없어.”

“와우, 국방부 시스템을 뚫 정도면 상당히 수준급이네요?”

홍빈이 눈을 크게 떴다.

“야야, 혁아. 말해봐봐. 국방부 시스템을 뚫어서 도안을 빼올 실력이면은 대체 어느정도냐?”

켄이 혁의 얼굴을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어..우선 다들 아시겠지만 보안이 몇중으로 되어있는 국가 시스템을 뚫어서 필요한 자료를 빼내어 오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리고 추적프로그램도 깔려있어서 리스크도 매우 크고요. 그런데 방화벽이고 암호화고 전부 뚫은 걸 보면 국가급 해커인데요. 결코 만만하지 않아요.”

“흠. 어쨌든 미사일 도안을 지네가 가지려고 뚫진 않았을 거고 분명 어따 팔아먹을 거란 말이지.”

“이 미사일 도안을 지면으로 줄까요 아니면 데이터로 줄까요?”

“내가 보기엔 지면으로 넘길 것 같아. 우선 전자기록이나 흔적이 남지가 않고 안의 내용을 바로 확인 할 수 있으니까.”

“그건 나도 동의해. 그리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새끼니까 우리나 나라에서 벌써 수상한 접근을 발견하고 추적중이라는 걸 알거야. 그래서 지면이 훨씬 유리하고 거래가 제일 안전한건 먀약거래할 때 같이 넘기는 거야.”

“아마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넘기려고 할 거에요. 일단 다음 마약거래현장을 잡는 게 우선이에요.”

 

 

*

 

 

“베리나 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발견됐어요. 컨테이너 부지인데 영상자료도 확보했어요.”

 

영상은 경찰국이 터지기 전 일자에 찍힌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단지 컨테이너 안팎으로 노동자들이 짐을 나르고 움직이는 영상이었지만 짬밥있는 요원들에게는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모습조차 수상해 보였다.

 

“이정도면 확실하죠?”

“당연하지! 이 일자 주변으로 일주일 정도 영상 확보해놔. 본부위치랑 인원수 대략 파악해야하니까.”

 

일주일 넘는 영상을 계속 보면서 검토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홍빈이었다. 고개를 슬쩍 돌려 며칠간 함께 밤을 샐 켄을 쳐다보니 역시 예상대로 흥분해 뾰족한 귀가 발갛게 익어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나 얼른 이거 하고 싶으니까 빨리 다들 나가요!’ 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러면 위치 대충 파악 했으니까 혁이는 저쪽주변에서 쓰는 아이피 주소 해킹해줘.”

“알겠습니다, 팀장님.”

“자자! 그러면 시간이 없으니까 얼른 시작하자!”

 

*

 

같이 하기로 했던 지휘관이 잠깐 눈을 붙인다면서 사무실을 나가놓고 여지껏 돌아오지 않은 탓에, 켄과 혁 그리고 홍빈 셋이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아, 눈 뻑뻑해. 내 안약 어디갔지?”

“맨날 쓰고 제자리에 안 두니까 못찾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제자리에 두라고 몇번을 말해요. 형 저랑 라식하러 갔을 때 눈약 중요하다고 몇 번을 들었는데 그거를.”

 

책상 서랍 몇개를 열었다 닫으며 눈약을 찾는 켄에게 혁이 핀잔을 줬다.

 

“형, 너 셔츠 주머니에 들어있는 거 뭐냐.”

 

홍빈이 켄의 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앗! 여깄네. 헤헤.”

 

켄이 머쓱하게 웃었다.

 

“이제 좀 잘보인다! 얘네는 구조가 좀 특이하네. 보스랑 카포 본부랑 거주동이 따로 있는데.”

“오, 그래요? 우리한테 잘된거네. 우리 팀이 보스코보 한번만 들어가면 되니까 편하고.”

“혁아, 너 쪽은 어때?”

“일단 아이피 주소는 잡았고 지금 프로그램으로 따는 중이에요. 컴퓨터 다루는 놈들 답게 인터넷망을 쓰긴 쓰네요. 좀만 기달려봐요.”

“오케! 잘 풀리고 있다! 나도 거의 완성이야. 위치는 파악했고 인원수만 좀 더 정확하게 적으면 돼.”

 

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

 

“내부 연결망 뚫었어요. 역시 암호형식이긴 한데 우리가 그 때 만들어놨던 프로그램에 대조해 보면 돼요. 지금 해볼게요.”

 

혁이 켄 책상에 올려져있는 오리스티커 하드를 집어들었다.

 

[8.7_항구지하_지대공_검은 약_A3_]

[1.2.3._insième]

 

“항구 지하?”

“부두 밑 쪽 말하는 것 같아. A3는 새벽 3시라는 뜻 같고.”

 

켄이 턱을 한 번 쓸며 말했다.

 

“내일 모레네. 인원수는?

“insième(동시에)라니까 1, 2, 3 그룹 같이 나간다는 거 아닐까. 역시 큰건이라 많이 움직이네.”

“그러면 형이 저쪽 인원수 파악한 다음에 알려줘. 그러면 내가 우리 애들 배치할게.”

“오케이. 3시간 뒤에 회의실에서 모이자.”

 

*

 

회의실 안에는 엄숙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휘관님, 진짜 나가서 돌아오시지도 않구!”

 

진지한 걸 못견뎌 하는 켄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려고 농담을 던졌다.

 

“자자, 그래서 장장 이틀간에 걸친 결과를 보고해봐.”

 

머쓱해진 지휘관이 화제를 돌렸다.

 

“저엉말 힘들었어요! 8일치를 이틀동안 봤으니.. 나중에 보너스 줘야돼요. 아셨죠? 그럼 시작할게요!”

 

켄이 입술을 뿌-내밀고 애교를 부렸다.

“일단 이건 영상을 토대로 쓴 검은 베일 내부 본부 예상도예요. 그리고 이건 각 위치마다 예상조직원수.”

“그리고 이건 제가 따온 암호문이고요. 저번에 입력해놓은 암호 프로그램에 대조해 보니까 8월 7일 새벽 세 시에 부두 밑 쪽에서 거래하는 것 같고요.”

“예상인원은?”

“저희가 생각 했던거랑 다르게 본부가 시칠리아내부 뿐 아니라 본토까지 확장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베리나 쪽 본부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7일에는 대충 80명 정도 동원할 듯 싶어요.”

“어우, 그것도 꽤 많은데.”

 

7일에 현장을 뛰어야 하는 행동 1팀 지휘 홍빈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인원수를 메모했다.

 

“그러면 그 날 베리나 코보에는 누가 남는데?”

“보스는 안 움직일 것 같고, 어차피 내부에 중요한 물건도 다 나른 후여서 보스랑 밑에 associate몇 정도. 인원수가 많지는 않은데 경계가 꽤 심할 것 같아.”

“흠. 그러면 부두에는 우리 팀이랑 2팀 전체 투입해야 하나.”

“대장님. 그러면 코보 진입은 제가 단독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홍빈아, 1팀하고 2팀 정예5명만 빼줘.”

 

켄이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5명? 미쳤어? 안돼. 인원수가 너무 적어. 그러다 수틀리면 우리 처음부터 시작해야해.”

 

지휘관이 눈을 크게뜨며 팔짱을 꼈다.

 

“여럿이 갔다가 위치 노출되면 더 복잡해져요. 상대하는건 몇 명 안되니까 단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위치, 시간, 배치상태까지 정확히 아니까 단독진행도 문제 없어요. 거기도 인원이 몇 안되니까 경계하고 있을 거에요. 그럴 때 너무 많이 들어가면 그게 더 위험해요. 혹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도.. 시간을 끌 수 있으니까 그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선입니다.”

“형, 괜찮겠어?”

“켄형 말이 맞아요. 인원을 많이 투입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아요. 좀 위험해도.. 그게 좋지 않을까요.”

 

혁이 약간 주저하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후.. 꼭. 조심하고. 홍빈이는 켄한테 붙일 애들 명단 적어서 보고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

 

 

 

 

 

“우선 여기서 대기해. 움직임이 크면 알아챌 수 있으니까 나따라 레오랑 식이만 이 밑에서 기다리고 나머지는 입구지켜. 또 들어가는 새끼없나 잘 봐주고.”

“팀장님, 그래도.. 혼자는 위험합니다.”

“내 말 들어. 아까 확인했잖아. 기껏해야 보스 하나랑 수하 몇이야.”

 

 

현장투입은 한두번도 아니었고 감도 좋은 편이었기에, 그리고 늘 즐거웠기에, 현장을 뛰는 건 그렇게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조금 조용한 것 같기도 하고.

켄은 총알과 함께 긴장감을 장전했다. 어제 일하다 약간 긁힌 상처들이 조금 따가웠다.

 

 

“4구역 앞, 입구 확인했고, 장전했습니다.”

 

 

 

 

3,

 

 

2,

 

 

1.

 

 

 

 

진입.

 

 

 

 

달칵-

 

 

 

 

그가 자리해있을 그곳을 정확히 겨눴다.

 

 

정확히, 허공을 겨눴다.

 

 

 

 

 

 

 

 

젠장

 

 

왜지?

 

 

왜.. 아무것도 없지?

 

 

 

 

 

 

 

 

#

(BGM-desperate)

 

 

 

 

 

“K-4구역입니다. 여기에 없습니다. 같이 나갔거나 이미 뜬 것 같습니다.”

“후.. 위험하니까 얼른 복귀해.”

“..죄송합니다. 즉시 복귀하겠습니다.”

 

 

 

 

 

 

 

 

분명 완벽했는데. 여기가 아니었나.

 

비어져있는 폭탄 상자위에 걸터앉아 머리를 한번 흩뜨렸다. 여기에 없다는 건 벌써 눈치채고 날랐다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니요, 나 아직 안 갔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혁이?”

 

5년간 늘 봐왔던 얼굴이다.

 

 

아니, 오늘은 좀 달랐다.

 

 

“혁아, 너가.. 너가 왜 여깄냐. 팔에 그건..뭐야.”

 

 

“그렇게 눈치빠르고 이해력 높은 사람이 판단을 못 내리는 거 보고 조금 실망했어요. 난 꽤 많은 여지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게임에서도 그렇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저쪽 그룹하나를 쑥대밭을 만들었을까? 내가 준 암호문도 그렇게 덥썩 믿고. 흠, 그래도 내가 만든 거긴한데 생각보다 빨리 풀어내서 좀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요.”

“너..팔에 그게 뭔지..대답해.”

“아, 이거요? 내가 긴팔만 입어서 몰랐나보네요.”

 

눈을 예쁘게 접어보인다. 또.

 

“이거 그거잖아요. 일베로네이로 문양. 편지에서도 봤죠? 내가 어디서 많이 봤다 얘기까지 했는데. 새길 때 좀 아팠지만- 어때요? 예뻐요?”

 

“너 그럼..”

“맞아요, 죄송하지만. 조직은 제가 만든 조직은 아닌데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혁이 손을 총모양으로 만들어 쏘는 시늉을 했다.

 

“처음부터 나를 노린거라면.. 그럼 기회가 많았을텐데..그냥..그냥 얼른 죽이지 그랬냐.”

“그러기에는 우리한테 떨어지는 콩고물이 많아서요. 뭐, 형이 제일 큰 목적이긴 했지만 겸사겸사 다른 곳도 같이 조지면 좋잖아요? 그쪽이 정보도 많고요. 덕분에 다른조직 covo di boss(보스의 본부)도 알아내서 뭐, 꽤 도움이 됐습니다. 신의 눈물 레드베일 건이나 경찰국건도 그렇고. 자꾸 우리쪽을 건드리길래 고민중이었는데 형이 딱 코보를 짚어줘서요. 걔네 때문에 우리 애들 많이 죽었는데. 그래서 그냥 그 때 현장 뛰었을 때 거기는 쓸어버리고 왔어요. 화가 나는데 어떻게 두명만 처리해? 다 쓸어버린거 들키면 곤란하니까 내가 잘하는 거 했지. 흔적없이 펑! 터뜨리기.”

 

검은베일 보스가 자비없는 표정으로 큰 손바닥을 후 불었다가,

 

그리고 또 다시, 눈을 예쁘게 접어 웃었다.

그래, 그거.

그렇게 웃는 거.

 

“아참, 코스노바 경찰국장님을 걱정하신다면.”

“닥쳐.”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켄이 다급하게 말을 막았다.

 

“왜요, 새삼스럽게. 맨날 보잖아요, 그런거. 뭐, 신세를 졌는데 이렇게 갚아 미안하네요. 용서하지 마세요. 그리고. 형은 언제나 제 편이었으니까, 형을 어디론가 불러내는 건 언제라도. 그래도 이런식으로 직접 오게 만드는 게 즐겁잖아요? 인생은 항상 즐겁게 살아야 하니까. 아, 바깥에 있는 친구들은 딱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알아서 경찰국장님처럼 잘 모실게요. 또 형이 예쁘게도 행동팀들도 안 부르셔서 좀 더 쉬웠네. 천재는 이래서 힘들어.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니깐.”

 

그 때 바깥에서 격력한 총소리가 들렸다.

 

“오우, 시작했다.”

 

혁은 어깨를 한번, 깔보듯이 올렸다가 내렸다.

 

“아, 저 형 이름도 아는데. 이재환 맞죠? 이야, 내 정보력 죽여준다.”

 

그였지만 그가 아닌 얼굴로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검은 무기같았다.

 

긴팔만 입던 그 아이, 5년전에 동시에 일어났던 일들, 그에게만 있었던 정보들, 일부러 흘렸을 그 정보들, 계속해서 일어났던 해킹이나, 뜬금없는 실수, 유독 그의 주변에서만 일어났던 폭발사고들.

 

 

왜 한번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의심하지 않은 걸까. 못한걸까.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던걸까.

 

 

혹시, 하고 넘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너가 나한테 너무 소중했어서.

 

 

배신감과는 조금 다른,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 않아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은, 그런 감정이 켄의 마음에 눅지게 피어났다.

 

 

혁이 열고 들어온 문으로 눈치없이도 여름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켄에게 닿은 그 바람은 넋을 잃은 그의 머리카락을 버석하게 칼질했다.

 

 

“씨발, 난..”

 

 

절규하듯 말을 뱉어냈다.

 

 

“난, 니가..”

 

 

넌,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최대한 무너뜨렸다.

 

 

처음으로 보는 반팔을 입은 혁이, 팔뚝에 산명하게 새겨진 검은 베일문양.

그 무엇보다 지금 켄의 숨을 조르고 있는 그 검은 무기는 밝은 혁의 표정과는 상당히 달라서, 이질적이었다.

 

“항상 즐겁게, 아시죠 형? 저는 형이 늘 즐겁길 바래요.”

 

 

 

 

철컥-

 

 

화르륵-

 

 

 

 

인생에서 처음으로 즐겁지 않았던 날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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