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eil et lune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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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부터, 홍콩 일대까지 전부 N이 뚫었답니다. 오까네 자체도 상당하던데.”
(* 오까네 : 돈, 범죄조직의 은어 )
명품 시계로 손목이 화려한 손이 파일을 내려놨다.
언뜻 보이는 숫자가, 칩을 굴려도 쉽게 못 얻는 수를 띄우고 있었다.
“한국에 있대?”
“주소지는 한국인데, 실거주지는 중국이나 일본이랍니다. 일본일 가능성이 더 크고요.”
“찾아봐, 걔 뺏기면 큰일나.”
“네”
몇 차례의 구두와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문이 닫혔다.
택운의 글록이 일정한 리듬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분위기의 파동을 일으켰다.
몇 해 전, 직통핫라인으로 떠오른 무기밀거래상이 뜨기 시작했다.
개인인지 단체인지도 모르고 알파벳 N만 하나 띄워논 채, 질 좋은 침은 죄다 구비해놓은 곳.
몇 번 사고 팔다보니, 꽤 쓸만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박혔고, 이는 곧 조직의 경쟁을 의미했다.
(* 침 : 칼 혹은 그 외의 종류의 흉기, 범죄조직의 은어 )
거래를 할 때마다 인종이 달라지고, 나잇대가 달라지다 보니,
누가 N인지도 모를 지경이니, 소문만 과대하게 퍼져나갔다. 이
를테면, N은 없다, 라던지.
그에 택운은, 오기인지 모를 뭣 같은 승부욕으로 그를 찾기 시작했다.
핫라인을 독차지해서, 입지를 확고히 굳히겠다는 의지 하나로.
의미 모를 글록에 매겨진 숫자와 N을 가지려는 그 모든 경쟁의 시작을 울리고야 말았다.
“N, 韓国のレオがあなたを探してます(레오가 당신을 찾아요)”
“今回も、移さ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か?(이번에도 옮겨야할까요?)”
“そうするほうが、もっといいみたいですね。(그러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요.)”
“見なくなって長くなったのに、元氣かな分からないです”
(안 본지 오래 됐는데 잘 지내려나 모르겠네요.)
창 밖을 보며 차를 마시는 그의 말을 들은 히카리는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달이 앉아있어 아름다운 낮이었다.
소문이 무성한 검은 무기 거래상이 맞을까, 그는 양면성의 얼굴을 가졌다.
달처럼 포근한, 혹은, 빛을 감추어 어둡토록 만드는 그.
검은 빛의 유카타가, 그의 종목과도 비슷하다고 히카리는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N의 비서 역할을 하는 중인 그녀는, N과 같기도 했다.
“月がなければ、太陽は消えるのです。(달이 없으면, 태양도 사라져요.)“
히카리의 말에 두 번째 웃음이 학연에게서 떠올랐다.
학연은 창 밖을 보며, 태양을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니, 택운아.
달은 태양을 알았고, 태양은 달을 몰랐다.
택운은 뜻을 모를 숫자들을 눈 빠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종이 안뚫려요, 째려본다고.“
”닥쳐, 그래서 찾아오라는건?“
”아직요, 근데 요즘 낌새가 이상해요.“
묵직한 R의 말에, 택운은 고개를 들었다.
”일본 지사를 공격받았어요, 피해가 심각한 건 아닌데 여러 차례로 침입했답니다.“
”내일 일본 비행기 끊어“
”네, 총기는요?“
”N한테서 직수입.“
가벼운 목례와 함께, R이 나가고 시선은 다시 의문의 숫자들로 향했다.
1, 2, 3, 4, 5.
뒤죽박죽 섞여있던 숫자를 나열했다. 5? 그 이상의 숫자가 존재하는 건가.
숫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한참을 들여다 보던 택운은. 문득 사진을 꺼냈다.
해맑토록 웃고있는 남자의 사진, 택운이 N만큼이나 그토록 찾고있는 달.
어쩌면, 태양은 달과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학연은, 눈을 깜빡이고 종이 위의 글씨를 다시 확인했다.
... LEO, JAPAN, 일본?
”히카리, 이거 제대로 된거에요?“
”はい、きちんと確認しました。(네, 제대로 확인했어요.)“
눈을 깜빡이던 학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났다.
유카타만큼이나, 어두워지는 달의 표면이 드러났다.
차를 타고 얼마쯤 이동했을까, 열어주는 문에 시선을 두다 학연이 발걸음을 옮겼다.
각을 맞춰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 마약과 알코올에 정신없이 헤롱거리는 사람들.
학연은, 가차없이 그들을 지나치며 의자에 앉았다.
”레오, 30일까지. 39개. 번호는 7번.“
”레오라면, 6번이어야 하는데요?”
“7번. 6번은 없어 레오한테”
번호가 없을 수도 있나? 보스가 저런 사람이었어? 등의 소리가 들려오며,
술렁이는 분위기에 학연은 그저 미간을 좁힐 뿐이었다.
숫자. 1번부터 14번까지 부여되는 거래 번호는, 그들에겐 절대적 존재였다.
비어서는 안되는, N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그런 수. 14.
14번의 거래가 채워지며 번호가 붙여지는 것은, 곧 거래 대상의 몰락을 예고한 일이었다.
그와 반대로, 14번 중, 하나라도 없다면, N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이 틀림없었다.
6번이 없다는 것은, N의 몰락을 뜻했다. 다들 학연을 미쳤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학연은 여유가 남아도냐며 신경질을 내곤, 눈을 감았다.
한 시간의 짧은 비행 후, 택운은 즉시 일본지사로 향했다.
“N?”
“내일 새벽 1시, 도쿄 시내타워 골목에서 하기로 했어요.”
“누가 가”
“제가 갑니다”
“얼굴 확인해, N인가 아닌가.”
“네”
터무니도 없는 소리였다. 그에 맞춰 R이 대답한 것도,
어쩌면 말도 안되는 장난에 받아준 걸지도 몰랐다.
택운은 오랜만에 와보는 일본에, 잠깐 향수를 느끼며 시트에 기댔다.
“1분 후, 기무라 사무실 도착합니다.”
기무라, 일본의 뒷세계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두고있는 인물이었다.
불 보듯, 한국에서 일본까지 세력을 펼친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보란 듯이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화이트 색상의 마세라티에서 내린 택운은, 묘한 대치상황 속의 분위기를 헤쳐지나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レオ?”
“はい, Astre solaireのレオです。”
그와 비서와의 간결한 대화가 끝나자, 문이 열렸다.
생각했던 것보단, 말랐고, 그에 다부진 사람이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악수를 청해와 손을 맞붙잡자, 묘한 악력이 실려 들어왔다.
“レオです。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레오입니다. 잘부탁합니다)”
“木村です。 始めまして。(기무라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한참이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지루해진 택운은 본론을 꺼냈다.
“저희 쪽은, 왜 건드리신 겁니까?”
“そちらが、先に私たちを攻撃したと聞いたが。(그쪽이, 우릴 먼저 공격했다던데)”
“전혀 그런적 없습니다.”
“それなら、私もそんなことないよ。(그렇다면, 나도 그런 적 없어.)
서로에게 묘하게 거슬리는 말투에, 서있던 조직원들까지의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R은 적당히 이쯤 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気をつけましょう。 お互いに (조심합시다, 서로)“
”同じだよ。(마찬가지야.)“
말을 마친 택운은 일어나 나왔다.
”묘하게 재수 없는 새끼네.“
”지켜볼까요?“
”응, 호텔로 가.“
”네“
학연은 머리를 짚었다.
숫자가 비어버린 것에 대한 파장이 생각보다 컸다.
그렇다고 비어버린 숫자를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달은, 태양이 먼저여야 했다. 달이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를 지켜내야 했다.
”思ったよりみんなたくさん大変です。(생각보다, 다들 힘들어해요)“
”今来て、数字を見直すことはできません。(지금 와서 숫자를 고칠 수는 없어요.)“
생각보다 단호한 학연의 음성이라고, 히카리는 생각했다.
그토록, 학연이 그에게서 모습을 숨기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연이 갑자기 숨어버린 이유가 궁금했다.
학연과 택운은, 택운이 조직 끄나풀일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그들이 알고 지낼수록, 사이는 점점 더 그 이상을 더해나갔다.
학연은,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우정은 더 이상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던 택운을 붙잡고 앉혀,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이거, 좋아하는건가봐.“
”무슨 소리야“
”오글거려서 말하기 싫은데.. 나 너 좋아해“
”...“
1년, 2년, 그들의 직급이 높아져 갈수록, 깊이도 더해져갔다.
서로의 영향도 꽤나 크게 미쳤고, 어두컴컴할 줄로만 알았던 인생에도,
둘은 나름대로 희망을 느끼며 지냈다.
문제는,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인지도 몰랐다.
학연은 주로 거래, 보안유지였으며, 택운은 주로 행동대장격의 역할이었다.
접점이 거의 없어야 할 직급의 두 사람이, 24시간을 붙어다닌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찌라시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한 조직의, 통신망과 행동대장이 게이라더라,
둘이 침대에서 밤낮없이 뒹군다더라,
따위의 찌라시는
터무니 없는 헛소문을 부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택운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학연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학연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택운은 조직을 노렸다.
그걸 눈치껏 알고 있던 학연은, 찌라시는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택운이 조직을 가지기도 전에 폭탄처럼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달의 시선은, 태양을 둘러싼 우주를 보고 있었기에, 그는 불안했다.
달은, 빛을 받을 수 없었어도, 태양을 돕기 위해 스스로 빛을 냈다.
학연은, 그 길로 모든 소문을 정리하고 잠적했다.
어떻게 하면 그가 모르게 택운을 돕지, 하다가 세운 것이 N이었다.
한 두 번 무기를 팔다보면 당연히 Astre solaire 역시, 자신의 N을 이용할 것이라 확신했다.
도쿄, 베이징, 홍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모았고,
도중, 히카리를 만나 N으로써의 입지를 다졌다.
택운이는, 알아서 잘 할거야라는 어설픈 믿음을 가진 채.
그에 비해, 택운은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어제까지 같은 집, 같은 방, 하다 못해 같은 바디워시까지 썼던 애가,
아침에 일어나니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잠귀가 밝은 택운인데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약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왜?, 도대체 걔가 나한테? 무엇 때문에?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꼬리는, 의구심을 분노로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감정을 증폭시켰다.
몇날 며칠을 참을 수 없어 자기의 하수들을 데리고 닥치는 대로 쏘고 부시고 찔렀다.
미치광이 행동대장.
미치광이 보스.
미쳐버린 태양.
태양은 보이지 않는 달에, 점점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가 폭발을 멈춘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거래하는 날 새벽은 때 이른 장맛비가 내렸다.
물품을 챙기는 히카리를 보던 학연은, 웬일인지 본인이 가겠다며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학연이 가는 길 뒤로, 그에 대한 걱정과 N에 대한 불신이 뒤따랐다.
타워, 소. 두 글자만이 종이 위에 적혀있었다.
고전적일지도 모르는 방법이나,
타워는 도쿄의 심볼인 도쿄 타워를, 소는 축시, 즉 새벽 1시를 의미했다.
온전히, 고전적인 것을 유독 좋아하던 택운의 성격이 오로지 담겨있었다.
”레오답네-..“
작게 중얼거린 학연이 이내 도쿄 타워 뒤편으로 향했다.
비의 습한 기운이 학연의 티셔츠를 파고들어 달라붙게 만들어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한참이나 아무렇게나 널려있던 의자를 주워앉아 멍때렸을까, 차소리가 들렸다.
이미 눈까지 눌러쓴 모자를 더욱 누르며 학연은 입구를 쳐다봤다.
검은색 마세라티. 택운이 입버릇처럼 드림카라며 말해대던 차였다.
피식하고 웃은 학연은 일어났다.
곧, 차에서 누군가 내렸고 학연은 그를 쳐다봤다.
태양이었다.
무슨 기분인지, 갑작스럽게 비어버린 저녁 스케줄 탓에,
택운은 한참이나 호텔 침대에 누워 글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재수 없던 기무라를 어떻게 복수해주지 하는 생각과 함께.
”거래라도, 가실래요 새벽에?-“
그를 보다못한 R이 말을 꺼내자,
택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갈래. 몇시라고?“
”소.“
지금은 쥐의 시간이니, 곧 소겠구나 싶었던 택운은
들고있던 글록은 침대에 처박아둔 채, 일어났다.
풀었던 안전장치를 다시 걸어놓는 몫은 언제나 R이었다.
볼 때마다 새끈하게 느껴지는 마세라티였다.
택운은 마세라티를 볼 때마다 은근한 희열을 느꼈다.
자신의 달에게도, 입버릇처럼 말했던 자동차기에,
택운은 본인답지 않게 꽤나 차를 아꼈다.
때 이른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택운은 비를 보며 아까운 내 차 괜히 끌고나왔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택운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던 R은,
생각 저 끄트머리 어딘가에서, 불안함을 보았다.
택운을 말릴까 하다가도, 본인이 가자고 입을 열었으니 가지말라고 할 명분이 못되었다.
알 수 없는, 확신도 하지 못할 그런 불안감이 R을 휘감았다.
도쿄 타워 공사장의 주차장에 R이 내렸을까,
갑작스레 차 뒷문이 열리는 걸 본 R은, 불안감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레오의 알 수 없는, 명목적인 저 한마디에.
”차학연.“
학연은, 꽤나 당황한 기색으로 택운을 쳐다보았다.
계산이 달라졌다.
만날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니가 왜 여깄어?“
저 단순한 물음에, 학연은 뭐라 대답할까 고민했다.
내가 N이야, N은 나야 ?
뭐라 대답해야, 태양이 온전히 받아들일지, 혹은 받아줄지 고민했다.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보며 고민하다,
”오랜만이야 택운아“
형식적인 안부인사.
한마디를 내뱉었다.
말을 하고도 시선이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그도 나와 같았다.
학연이 막을 새도 없이 택운은 학연의 손목을 잡아챘다.
막상 마주보면, 화가 치솟거나, 왜 갑자기 사라졌냐며 따질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잡지 못하면, 다시 없어진다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 참을 수 없는 소유욕이 솟았다.
N이 학연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고민해도 충분했다.
근 몇 년을 흔적없이 사라진 학연이 눈 앞에 있다는 점이
택운은 제일 중요했다.
학연의 손목을 잡아끈 채로, 공사장의 안쪽까지 가서야,
택운은 손목을 풀어줬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그랬어?“
학연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내가 없어진 이유를, 이유를 말하면 택운이가 과연 이해해줄까?
너 때문에 사라졌다 말하면,
혹여나 네가 이상한 감정이 들진 않을까?
여러 의구심의 생각 속, 미성의, 그렇지만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학연, 말해.“
”미안해“
”.. 설마 그게 끝이야 지금?“
”... 지금 해줄 이야기는 아니야-“
네가 상처받을거야, 택운아. 라는 말은 뒷말로 삼키며,
달은 태양을 마주보았다.
태양은,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기세였다.
”도대체 뭐가, 언제까지 비밀로 해서 나한테 안알려줄거야?“
”택운아-“
”난 아직도 니가 왜 사라졌는지, 왜 이딴데 숨어서 거래나 하고있었는지 이해가 안가.
니가 왜? 뭘 잘못한거라도 있어? 왜 잠적해서는 사람 화나게 만들어-“
결국, 택운은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혔다.
아직 해줄 이야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 나한테 말할까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없던 남자친구였나? 혹은, 사람이었나?
”..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호텔로 가서 이야기 마저 하세요. 소리가 커요.“
상황이 좀 더 심각해져 가는 것을 보고 있던 R은,
경찰이 곧 뜰 것 같다며, 택운이 묵고 있는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
”...“
한참이나 정적이 흐르던 호텔 방 안은,
달과 태양이 마주보고 있기를 반복했다.
의외로 먼저 말문을 열었던 건 학연이었다.
사라진 이유를 말하기에 오래 걸릴 줄만 알았던 시간은,
달의 고백으로 태양을 잠재우는 데에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찌라시, 그의 걱정, 몇 년간의 고생, 잠적
순조로운 듯, 순조롭지 못한 듯 이야기가 흘러갔고,
택운의 보이지 않지만, 미묘한 반응 속, 학연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고,
그의 말이 끝마치고 나서야,
택운은 그제서야 이해한다는 듯이, 분노에 찬 눈길을 거뒀다.
내내 눈을 마주쳤던 학연은, 그제야 굳어있던 입꼬리를 올렸다.
택운은 학연 손에 들려있던, 7이라고 적힌 상자를 보았다.
”7? 6이 아니라?“
”응, 7.“
”왜?“
”조만간 너 보러 갈 생각이었거든.“
택운의 미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주름잡히자,
학연은 작게 웃었다.
”N이 알파벳 14번째거든, 그 숫자에 맞춰서 보통 거래했어.
10번째가 넘어가면, 조직이 차차 흔들려. 그러다 보통 14번째쯤 되면,
그 뒤로 망했는지 소식이 없더라고. 나름 계산이었어. 그래서 거래할 때마다
숫자를 넣지, 1에서 14까지. A부터 N까지. 가끔 알파벳도 섞어서 보내기도 해.“
”6은 왜 빠진거야?“
”내 생일 6월이잖아. 얼굴을 들킬 사람이라면 6을 뺐지.
나와 관련된 거, N이 들킨다는 소리잖아. 결국은 내가 망한다는 거고.“
”아-..“
짧게 탄식을 내뱉은 택운이 숫자를 만지작거렸다.
택운의 손에서 상자 손잡이를 빼온 R이 거래는 거래라며
물품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호텔에서 자고 가네, 마네로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둘은,
결국 나란히 침대위로 누웠다.
한참이나 학연의 눈이 감긴 얼굴을 훑어보던 택운은
꿈인가 싶어, 몇 번씩 학연의 얼굴을 보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어떤 시점에 이르러서, N이 Astre solaire에 인수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N도, Astre solaire도, 딱히 긍정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태도 역시, 보이지않았다.
히카리는 택운과 학연을 보며,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태양과 달, 이들은 분리가 아닌 공존을 하는 것이 맞았다.
The sun and moon together, was beautiful.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