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특별한 외출
BLV - POUR HOMME
w. 별빅토끼
@ravightsm94
눈 부신 해가 오르고 지는 평범한 일상은 자신을 무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 세상은 오직 낮과 밤으로만 시간의 흐름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내 삶의 루트는 뫼비우스의 띠 그 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평소와 다른 조금은 특별한 꿈을 꾸었다. 매번 같은 그녀가 나오는 꿈. 퀘퀘한 공기와 소음으로 가득 한 도시를 걷기도 했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녀는 내 꿈의 주연이었고 나의 전부였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했다. 그녀 역시 언제나 나를 사랑스러운 몸짓과 말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며 우리는 잊지 못할 틈새를 만들었다.
“혁아”
그 날의 꿈은 유난히 비가 거칠게 내렸다. 하늘은 숨 막히는 어둠에 먹혀 칠흑같이 어두웠다. 사람 하나 없는 길, 유난히 밝은 카페 조명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얄팍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작은 손짓에 가슴이 떨렸다. 걸음을 재촉해 그녀 앞에 앉자 머지않아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
그녀의 이별은 태풍처럼 모든 것을 휩쓸었다. 나의 모든 감정이 고장 났는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뜨거운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이별을 고한 그녀가 더 슬퍼 보이는 건 착각이었을까. 떠난 그녀를 잡지 못한 채 내 세상으로 돌아왔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했던 그녀와의 이별은 현실에서도 견디기 힘들었다.
“진짜 그녀를 볼 순 없을까?”
처음으로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있는 세상. 내가 있는 이곳이 결코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진작에 눈치챘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세상에 사람은 단둘, 조향사 엔과 내가 전부니까. 나는 이곳을 나갈 수 없고 조향사 엔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이유는 모른다. 애초에 기억이 없고 이 세상을 떠나는 방법도 모르니까. 오로지 내가 아는 기억은 엔과 함께 지낸 시간이 전부였다.
“혁아, 거기서 뭐 하니? 안 들어오고?”
이 세상 향을 모두 가진 그는 조향사라 했다. 진짜 그가 조향사인지 귀신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의 곁에서 함께 향수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저기 엔, 꿈을 꿀 때마다 같은 여자가 나와요”
“그래? 그래서?”
“그녀를 만나고 싶어요. 엔… 혹시 그녀를 만나게 해주실 수 있나요?”
“혁아, 나는 신이 아니야. 그녀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전혀 몰라. 꿈은 네가 만든 허상일 뿐이야”
엔의 말처럼 그녀는 정말 내가 만든 꿈의 일부분일까. 향수 공방 뒤편에는 절벽이 있다. 파란 바다가 보이는 절벽. 파도 소리와 파란 하늘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장소였다. 이 절벽에서 떨어진다면 저 너머의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혁아,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많은 사람이 정이 들만하면 떠났지. 이 절벽 끝 죽음의 길로. 모두 중독되어 버린 거야”
“무슨 중독이요?”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
“자유…. 이 절벽에서 떨어져 얻는 죽음이 자유일 거라 착각했다는 건가요?”
“모두 그렇게 생각하더라. 바보같이….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지 자유가 아니야. 더 나은 세상도 환생도 없어.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이자 상상일 뿐이지. 그러니 너는 나를 떠나지마”
“엔…….”
엔은 씁쓸히 공방으로 돌아갔다. 절벽 끝에 선 내가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파란 하늘, 파란 바다…. 어딘가 있을 그녀가 사는 세상. 그것은 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곳을 떠나길 바라는 내 무의식이 그녀가 죽음이란 탈을 쓰고 절벽 끝으로 나를 몰아넣는 것일까.
“원해요?”
낯선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놀란 마음에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나 파란 머리를 한 남자가 내 손을 잡아 절벽 끝에서 올려주었다.
“괜찮아요?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네”
“……….누구세요?”
“나요? 아, 기억 못 하겠구나. 나는 이홍빈이라 해요. 엔과 향수를 거래하는 사람이에요”
여기 있는 동안 그를 본 건 처음이었다. 정확히 이곳에 온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그런데 그는 나를 알고 있는 듯하다.
“거래라면 엔씨는 안에 계세요”
“알아요. 나 오늘은 그쪽한테 볼 일 있어 온 거에요”
“저요?”
“내 제자가 혁이씨에게 부탁을 하나 했어요. 그 부탁 들어주신다면 당신의 궁금증도 해소될 거 같은데”
“부탁이 뭔데요?”
“이 향수 기억나요?”
“그 향수, 엔이 저를 위해 만들어준 향수에요”
“맞아요, 바로 이 향수를 그녀에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엔은 나를 위한 향수라며 내가 좋아하는 파란 하늘과 바다를 따다 '블루'라는 이름의 향수를 만들었다. 엔의 손을 거쳐 이탈리아 어느 유명한 거래처로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 제가 아는 그녀를 말하는 건가요? 홍빈씨는 그녀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요?”
“글쎄요…. 뭐, 차차 아시게 될 거예요”
그가 내민 손바닥엔 작은 알약이 놓여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홍빈은 그런 나를 안심시키고 알약을 손에 쥐여주었다. 알약을 받은 나는 고민 없이 그대로 삼켰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고 머리는 깨질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결과는 혁이씨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오세요…”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니 정말 익숙한 곳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지내던 방. 그럼 홍빈을 만난 것도 꿈이었을까. 옷장에 든 옷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어어? 못보던 친구네? 옆집에 아무도 안 사는 줄 알았는데, 잘생긴 친구가 살고 있었네~”
“어? 사람….”
“뭘 그리 놀라고 그래,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아…. 네”
“풉, 귀엽네. 내가 지금 스케줄이 있어서 다음에 보면 사인하나 해줄게. 아아, 그리고 어디 급하게 가는 모양인가 본데 주머니에 든 거 떨어지겠다. 잘 챙겨”
“주머니요?”
그의 말대로 주머니 안에 향수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다. 다시 주머니 깊숙이 넣고 앞서가던 그를 붙잡고 물었다.
“저기요!! 여긴 어디예요?”
“ ‘저기요’가 아니라 이재환이거든? 그리고 외국 살다 왔어?! 어디긴 한국이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을 잃어서”
“아, 그 드라마에 많이 나오던 기억상실증? 실제로 보니 심각한 거구나 미안”
“아, 아니에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 꼭 찾길 바래. 그럼 난 이만”
이럴수가. 내가 진짜 세상으로 나왔다. 재환과 헤어지고 보이는 길로 걷고 걷다 보니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길거리에 파는 음식도 먹고 수다도 떨었다. 그 사이로 나 역시 평범함을 느꼈다.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갔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바다를 옆에 끼고 걷다 보니 전망 좋은 카페가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석양도 지고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좀따 한강에서 치맥 콜?”
“치맥이 뭐냐, 요즘 한강에선 피맥에 라면이야”
우연히 카페 앞에 있던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내가 보는 이 풍경이 바다가 아니라 한강이었구나. 한강……. 한강이라고? 너무나 익숙한 단어와 장소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중 가장 익숙한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구석진 곳에 나무 책장과 테이블. 그리고 그곳에 한 여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에 가슴이 요동치고 손이 떨려왔다.
“빛나”
“네?”
머리보다 행동이 빨랐다. 내 손은 이미 그녀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나 내가 찾던 그녀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도망치듯 카페를 나와 다시 한강을 따라 걸었다. 내가 그녀에게 왜 빛나라고 했는지 왜 그녀를 거기서 찾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빛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확실했다. 나는 그녀와 이곳을 온 적이 있고 나는 그녀가 보고 싶다.
“상혁아”
뒤를 돌아보니 다른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석양빛에 얼굴이 가려져 뚜렷이 보이지 않았으나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일까? 정말 그녀일까? 내가 찾던 그녀이길 바랐다.
“고상혁, 오래 기다렸어? 다른 애들은?”
그녀는 나를 지나쳐 내 뒤에 있던 남자에게 달려갔다. 그녀도 내가 찾는 그녀가 아니었다. 상혁이란 이름에 반응한 걸 보면 내 진짜 이름은 ‘혁’이 아니라 ‘상혁’인걸까. 밤이 찾아와도 도시의 거리는 찬란했다. 술 냄새 풍기는 사람들조차 반가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 세상에 나는 왜 살 수 없는 걸까.
다음날.
꿈은 꾸지 않았다. 다만 엔이 걱정되었다. 많은 사람을 절벽에서 잃었을 그가 혼자 그 세상에 남아 외로워할 생각에 미안함이 들었다. 거기다 머릿속을 헤집는 두통과 현저히 느려진 맥박이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방에 있는 작은 상자에 향수를 넣었다. 다시 상자를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어제 갔던 길과 반대로 걷다 보니 큰 종합병원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차가 들락거렸다. 병원을 지나치려 했으나 계속 숨이 차 병원 주변 공원에서 잠시 앉았다.
“김원식, 우리 헤어지자”
“싫어”
보자 하니 그녀는 마른 체구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를 보러 온 듯 한 손엔 장미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이번 달이 한계래. 그러니까 이제 그만 찾아와. 나도 너 그만 보고 싶어”
“너 거짓말 못하는 거 알지? 다 티나”
“너 바보야? 나 죽는 꼴을 꼭 봐야겠어? 싫다고…. 네 앞에서 이런 모습 보여주는 거 정말 싫다고!!”
“죽긴 누가 죽어!! 너 안 죽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너 살릴 거야”
이별 중인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내 곁에 있던, 내게 이별을 고하던 그녀가 그들과 엮이어 꿈에서 보았던 기억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나는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몸부림치다 쓰러졌다. 모든 기억이 가시가 되어 머리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빛나야…”
앞은 까맣게 흐려지고 결국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동안 꿈을 꾸었다.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가 죽어가는 나를 안아주는 꿈. 천사의 품은 따듯하고 포근했다.
다시 눈을 뜨자 천사는 없었다. 병원 특유의 냄새와 눈부신 전등뿐이었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가 깨어난 나를 발견했는지 급하게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반쯤 닫힌 커튼을 걷어내고 내 상태를 살피었다. 그리곤 이것저것 기록하더니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환자분 좀 괜찮으세요? 갑자기 병원밖에 쓰러져 있어서 안으로 데려왔어요”
“……. 잘지냈어요?”
“네?”
“여전히 예쁘네요”
“음… 저희 구면인가요?”
“꿈에서 봤어요”
“칭찬은 고마워요. 하지만 머리는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하겠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행복해요?”
“….진짜 이상한 질문이네요. 행복하다 못해 사는 게 즐거워요. 답변이 좀 되었나요?”
“네. 그거면 충분해요. 정말 다행이에요”
의사는 소탈하게 웃으며 간호사에게 멀쩡한 것 같다고 말하고는 서류 작성한 뒤 보내라는 말이 들렸다. 꿈에서 본 천사가 분명했다. 그녀가 어떤 인물로 나오든 그녀는 내 꿈의 전부였으며, 내 기억 어딘가에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저기요, 이거 그 의사분께 전해주시겠어요?”
간호사는 내가 건네준 상자를 들고 의사에게 가려다 아차 싶은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 누구라고 전해드ㄹ….어? 어디 가셨지?”
간호사는 감쪽같이 사라진 혁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혁을 찾을 수 없었다. 간호사는 혁의 부탁대로 의사가 있는 진료실을 찾아와 의사에게 상자를 건넸다.
“빛나쌤, 정말이지 그 남자 이상했어요!!”
“왜요?”
“이거 빛나쌤한테 전해달라 한 뒤 사라져버렸거든요!! 흔적도 없이요….”
“그거참 수상하네요. 혹시… 귀신인가?”
“무섭게 왜 그러세요. 그럼 저 상자는 어떻게 설명하시게요?”
“지금 풀어보면 알겠죠?”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상자를 열었다. 그건 파란 병에 든 향수였다. 그것도 일반 로드샵에 파는 흔한 남자 향수.
“어? 향수네요? 그 향수 우리 오빠도 쓰는 건데 향 정말 좋아요. 이름이 뭐더라… 아! 불가리 블루 옴므!!”
“근데 이걸 왜 저에게 준걸까요?”
”빛나쌤, 곧 결혼하시잖아요. 혹시 남자친구분 드리라고 준 선물 아닐까요?”
“굳이 택운씨 줄 선물을 제게?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분이?”
“하하…… 잘 모르겠네요. 저 자리 너무 비우면 안 돼서 그만 나가볼게요!”
빛나는 향수를 둘러보곤 뒤에 놓인 액자 속 웃고 있는 택운과 자신을 보았다. 작은 미소를 띠며 향수 뚜껑을 열어 공기 중으로 뿌렸다. 짙고 진한 블루의 향이 그녀의 주변에 맴돌았다.
'상혁아, 우리 헤어지자'
'어?'
'우습잖아. 희소병이라 오래 살지도 못한다 하고… 툭하면 아프고 약은 달고 살고… 몸무게가 하루 만에 2kg 더 빠졌어. 살아있는 시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아'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리 이제까지 포기 안 하고 잘 지냈잖아… 내가 이박사님께 다시 연락드려볼게'
'나 죽을 때까지 네 옆에 있어 보려 했거든? 영화처럼 죽는다고 떠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하려 했는데… 막상 내가 겪으니까 왜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려 하는 지 이제 알겠어.'
'빛나야…..'
'괴물 같아 내 모습!! 길 가다 아픈 것도 싫고 어찌할 줄 모르는 네 모습 보는 것도 미안해 죽겠어.… 그냥 너에게 예뻤던 모습만 남겨줄래…. 그러니까 우리 그만 하자'
빛나는 평소 앓고 있던 희소병으로 오래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점점 몸은 야위어가고 툭하면 쓰러지고 몸은 항상 아프다고 했었다. 상혁은 오랜 시간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의대도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를 고칠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다면 진작에 그녀는 아프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를 살릴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빛나를 고칠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박사님?'
'상혁씨의 운명과 그녀의 운명을 바꾼다면 가능합니다'
'그럼 제가 죽고 빛나가 산다는 건가요?'
'단,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녀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상혁씨도 기억을 잃고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될 수 없다는 것이죠'
'뭐든 좋아요!! 할게요!! 빛나가 살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습니다!!! 대신….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 뭔가요?'
-
“뭐야…. 향수가 눈에 들어갔나? 왜 눈물이 나지?”
빛나는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향수를 자신의 서랍 깊숙이 넣었다. 향은 빛나의 곁을 짙게 맴돌다 공기 중으로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박사님이 가끔 저 대신 그녀를 찾아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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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은 절벽 위에 서 있는 엔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뭐가요?”
“거짓말해서”
“….괜찮아요”
“절벽에서 떨어지면 완벽히 죽을 수 있어…. 떠날거니?”
“아니요. 지금이 좋아요. 이게 제 운명이니까요”
“표정을 보니 진심이네…. 그 세상이 너에게 조금은 특별한 외출이었나보다. 다행이야”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진심으로 사랑했다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잊은 그녀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세상 어딘가 존재하는 나는 오늘도 멀리서 그저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어느 곳이든 네게 빛날 이유가 존재한다면 내가 있는 곳은 어디든 좋을거야”